내가 글을 쓰지 않은 이유?

by 굿디의 새싹교실

나는 글을 잘 쓰는 편이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글을 잘 쓰는게 아니라 글씨를 꽤 잘 쓰는 편이다. 어릴적부터 나이답지 않게 할아버지들이나 쓸법한 정자체를 가지고 제법 깔끔하게 글씨를 썼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들과 어른들에게 글 잘 쓴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진짜였을까? 사실 내 글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어린 나이치곤 꽤 깔끔하게 쓴 글씨에 대한 칭찬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백일장에서 큰 상을 타 본 경험은 거의 전무했다. 그렇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나에게 글쓰기의 재능 여부는 어느새 백일장이나 문예대회의 시상 여부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글쓰기 재능 없는 아이가 되어 거의 20여년을 글쓰기와는 멀리하며 살았다.


글쓰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글쓰기는 반갑지 않지만 글 읽기는 나에게 즐겁고 새로운 분야였다. 특히 책을 통해 만나는 문학적 세계는 신선했고 즐거웠으며 때론 무섭고 긴장감 넘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특별 활동으로 문예 창작반에 들어갔다. 그 시절 선생님과 몇몇 아이들과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을 읽고 분석하며 글쓰기 활동을 했다. 어느날 끔찍한 곤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면서도 사회구성원간 소통 부재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 소설 '변신'에 대한 분석글을 쓰는데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답답했다. 읽고 느낀 바가 너무 많은데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니 참 비극이다. 그 때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 나도 글을 잘 썼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문제는 생각하는 만큼 인간 행동의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후로 나에게 특별히 글쓰기 재능이 요구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주구장창 시험기간이면 써야했던 레포트는 화려한 문학적 어휘나 독창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하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글쓰기 재능보다 검색기술과 복사 붙여넣기면 충분했다.


대학교 4학년 영화 '메멘토'를 가지고 기록의 역사와 사실로서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단기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이 온전치 않음을 알기에 끊임없이 기록한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메모, 사진, 몸에 새긴 문신의 기록을 따라 범인을 쫓아가는 스토리의 영화이다. 이 영화의 해석과 후기가 무성하지만 나에게 기억되는 것은 주인공의 끊임없이 기록하는 행위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캐논 광고의 유명한 카피이다. 이 문구는 글쓰기에 관한 나의 생각과 습관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마치 메멘토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보다 기록을 의존했던 것 처럼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작년에 육아휴직을 1년간 하게 되면서 나는 결심했다.

'육아휴가로 주어진 아이들과 1년간의 시간을 빠짐없이 기록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일상 기록은 조금씩 확장되고 변화를 거듭했다. 매일 일상의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생기자 글쓰기는 시간이 단축되고 분량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단순한 일상의 기록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나의 생각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글쓰기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글은 나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누군가 나의 그릇에 담긴 생각을 보고 맛보고 즐긴다면 글쓰는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누군가는 읽지 않을까 하며 쓰고 있다. 물론 아무도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니까.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어지길 소원해본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펜을 든다. 그리고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