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원기둥 Jun 16. 2022

바람은 왜 부는 거예요?

 35개월 아들과 등원하는 아침, 하늘이 정말 맑고 바람도 시원하고 햇빛도 아름다워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아들은 어제 등원할 때 즐겁게 갖고 놀던 나뭇잎을 오늘도 줍는다. 그런데 바람이 휘잉 불더니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것이다. 아이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아이가 갑자기 주저앉아 버려서  "어린이집 빨리 가야 해"라고 나는 연신 말한다. 이미 시간은 10시를 향해 가고 있는 상황, 나는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아이를 살펴볼 여력이 없어, 어서 가자고 재촉만을 했다. 그런데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는 "바람은 왜 부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귀로만 그 소리를 들은 나는 "시원하라고 불지"라고 대충 이야기하곤 다시 아이를 재촉한다. 


하지만 움직이려 하지 않아서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을 들고 속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나간 것이 속상한 거다. 어린이집도 가야 하고, 아이도 달래주어야 해서 아이를 안고 가기로 한다. 14kg의 아이를 번쩍 안고는 "바람이 세게 불어서 나뭇잎이 날아갔구나. 그래서 속상했겠다"라고 말하니 코알라처럼 내게 안겨있는 아이는 와앙 서럽게 울며 "바람 나빠. 왜 바람이 부는 거예요?"라고 한다. 나는 웃음이 나지만 꾹 참고 "바람이 왜 이렇게 세게 부는 거야"라며  바람에 대한 원망을 같이 거들어 준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선생님께 아이가 마음 상했던 상황을 설명드리는데 그걸 듣더니 다시 와앙 아이는 운다. 


바람에 날려 나뭇잎이 떨어진 것이 이렇게나 속이 상하다면, 나뭇잎이 달려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상황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싶다. 어제 그 나뭇가지로 청소차 놀이를 하고, 깃발처럼 휘날리고 놀았던 것이 그렇게나 즐겁고 행복했던 것일까? 


내 나이 38세, 현재로서 나는 대부분 많은 상황이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딱히 무엇인가를 막 원하고 그렇게 되어서 매우 즐겁고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진짜 별로 없다. 그러한 나의 시선에서 아이의 그런 울음은 부럽기도 하였다. 아이의 그런 울음, 바람에 대한 원망, 사소한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대한 원함 이런 것들이 모두 살아 있음이지 않을까? 


나는 무엇인가를 그토록 원하고 그것이 되지 않아서 너무나 속상했던 것이 있었나? 너무 즐거웠던 일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정말 기억도 잘 안 난다. '뭐 그쯤이야' '나는 괜찮아' '흥, 별거 아니야'라고 훈련받고 연습한 대가 일 수 있겠지.


아이를 보고 배운다. 좀 더 살아있는 방법에 대해서..


나무야 낙엽을 만들어줘 고맙다.

바람아 나무에서 나뭇잎은 떨어 뜨리되, 우리 아이가 주워 든 나뭇잎은 그냥 지나가 주라. 


오늘의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