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을 하다
그해 여름은 참으로 맹랑했다.
40을 넘기고 몇 해 후였다. 봄부터 아이들은 한참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겨루기를 하는 때였다. 매일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던 그가 퇴근해서 곧바로 들어와 밥만 먹으면 방에 들어가 눕는다. TV도 안 틀고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름을 지나더니 토요일만 되면 아침에 나가 밤이 늦어서 돌아오곤 한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어요? 직장에서 무슨 일이 생겼어요? 같이 풀어요.”
표정도 없이 나갔다 돌아오는 토요일 날의 모습은 어느 때는 눈이 부은 것 같기도 하고 힘이 다 빠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답답하기가 숨이 막힐 지경이던 어느 토요일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밖에서 자고 오는 날은 한 번도 없었는데 여자가 생겼을까? 무슨 일일까?
기가 막힌 하룻밤이 지나고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 돌아온 그에게 나는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어 마구 다그쳤다.
“토요일마다 나가 밤이 되어야 들어오더니, 이젠 외박까지 해요?”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오는 거예요. 여자 생겼어요?”
“아니야”
그 한마디 하고 또 묵묵부답이다.
“그러면 내가 내일 학교에 찾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러는지를 밝혀야겠어요. 더는 참을 수가 없어요. 숨 막혀 내가 죽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강가에 있는 절에 갔다 오는 거야”
“그럼, 외박은 왜 하는데요. 어디서 잤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냥 마음이 울적해서 남한강 강가에 석불이 있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절에서 108배를 하면 땀범벅이 되면서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에 휩싸여 눈물이 나고 울다가 집에 오곤 했다는 것이다.
“그럼 외박한 날은 어디서 잤어요. 절에서 잠도 재워줘요?”
“그날은 실컷 울고 강가로 내려갔는데 작은 가게가 있었어,”
그 집 평상에 앉아서 술을 먹다가 취해서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어디 무릎 좀 봐요. 108배 절을 했으면 표시가 나겠지”
걷어 올린 바지 속의 무릎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무릎은 피딱지가 생겼다가 떨어지고 또 생기며 시꺼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부글거리며 끓던 마음이 이번에는 천 길 낭떠러지로 내려앉는 듯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했을까?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지? 나는 이 사람이 이렇게 힘 드는 것을 이야기할 대상이 못 되는 존재일까?
나는 앞으로 나갈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는 책망하지 말고 곁에 우리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하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당신이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함께 풀어야 해요.”
나는 아이들과 의논하여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식구가 모두 그 절에 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맹렬한 기세의 여름이 그렇게 가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의 기운이 바뀌는 듯하던 날이었다.
온 식구가 다 함께 절에 갔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강 언덕 위의 자그마한 절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돌부처를 절 안에 모셔 놓았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넘나드는 절에서 내려다보니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줄기가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마저 흘러내리게 하는 듯했다.
누가 알려줘서 이렇게 먼 곳의 절을 알게 되었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강물을 내려다보니까 모든 게 다 허망한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있으니까 나도 머리 깎고 절에 들어오고 싶어지네. 그런데 나는 머리는 못 깎아, 머리통이 못나서”
웃기는 소리도 해가면서 나는 아이들에게도 절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아빠와 같이 절을 하게 시켰다. 나도 그의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잡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했다.
식구가 다 같이 절에 다녀온 후 그는 다시 절에 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곤 아이들과 휴일을 보내곤 했다.
왜 절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자기 맘을 모르는 채한다고 말한다.
그해 여름은 참으로 맹랑한 모습으로 지나갔다. 지금도 그해 여름을 생각하면 뜨거운 더위도 얼어붙을 것처럼 서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