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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r 10. 2019

본질이 혁신이다.

혁신의 시작, 밖이 아닌 안을 먼저 깊이 들여다보는 일.  

십년 전 쯤이었을까요. 많은 기업들이 ‘VISION 2020’을 기치로 브랜드의 이상향을 PPT File에 멋드러지게 그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마음속에만 존재하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2020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사이 세상은 모든 개인이 슈퍼컴퓨터급의 성능을 지닌 모바일폰으로 커피 주문부터 엔터테인먼트, 택시 탑승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혁신’이라는 것이 모든 브랜드와 비즈니스가 ‘기본’으로 탑재해야 할 요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혁신’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세상을 바꿔놓은 아이폰을, 또 다른 누군가는 패션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은 SPA 패션 브랜드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혁신에 대한 범위와 영역은 저마다 다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이러한 브랜드들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꿔놓았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요? 더 좋은 성능, 더 낮은 가격도 경쟁자로부터 고객을 뺏어오는 요소일 수 있으나 이는 한시적인 요소일 뿐임을 모두 인정할 것입니다. 


혁신이라는 단어인 innovate의 어원을 살펴보면 새롭다는 뜻의 ‘nova’와 ‘안에서 밖으로’를 뜻하는 ‘in’이 결합된 단어로, 이는 “안에서부터 시작해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새롭다는 것을 바깥으로 드러난 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속부터 시작해서 보이는 겉까지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요소들의 변화로 부분적 개선을 이루는 것과 혁신이 다른 이유는 바로 ‘안을 들여다 봄’ 때문일 것입니다. 

안을 바라보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라면 그게 과연 내가 하는 일, 또는 브랜드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특히 IT, 로보틱스, 플랫폼 비즈니스 등 첨단 비즈니스 영역으로 여겨지는 분야가 아닌 전통적인 제조, 유통 산업에 있어서의 혁신이라는 것은 더 요원해 보입니다. 특히 업계의 룰이 엄격한 뷰티 비즈니스는 혁신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울 것 없어보이는 뷰티 업계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글로시에(Glossier)입니다. 


글로시에, 개인의 파워(Power of the Individual)를 믿다 

'밀레니얼 핑크'로 혜성같이 나타난 뷰티 스타트업, 글로시에

‘밀레니얼 핑크’라는 브랜드 컬러와 유쾌하고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글로시에는 단순히 브랜드를 멋지게 만든 것으로 성장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여타 뷰티 브랜드들이 경쟁 브랜드들과 가격, 기능으로 경주하고 있을 때, 글로시에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화장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소비자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1000여명의 소비자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 글로시에의 Milky Jelly Cleanser

글로시에의 히트상품인 클렌저와 아이브로우 역시 사용자 커뮤니티 관계 속에서 탄생한 성과입니다. 모든 정보가 웹에 공개되고 소비자에게 권력이 이동하는 지금 이 시대에 뷰티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마음 속을 들여다본 결과지요. 


뷰티블로그 'Into the Gloss'의 파워블로거로 시작해 글로시에를 키워온 CEO, 에밀리 와이스


“지난 4년간 우리는 여성들 개개인이 제품에 대한 자신의 스토리를 나누는 것에서 비즈니스를 만들어왔습니다. 여성들, 즉 소비자 개개인이 모두 우리 브랜드의 활동가(Activator)들인 셈이죠. 아이패드, 아이팟 같은 디지털 기기와도 비슷합니다. 같은 기기라도 사용자마다 사용 방법은 전혀 다를 수 있죠. 이것이 글로시에가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 글로시에 창립자 에밀리 와이스(Emily Weiss)


뷰티 비즈니스를 하는 테크기업, 글로시에 


글로시에는 유통과 판매 방식도 남다릅니다. 뷰티를 ‘제품’이 아닌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집중하는 철학에 기반한 결과입니다. 일반적인 뷰티 스타트업이 생각할 수 있는 물리적 확장(Expansion), 즉 세포라와 아마존과 같은 유통처에 입점하는 대신 소비자와의 관계 확장(Engagement)에 집중해 모든 판매와 소통을 glossier.com에 결집시킵니다. Glossier.com을 통해 제품 사용자 상위 1000명이 메신저 채널에서 주당 1만건에 달하는 메시지를 주고 받습니다. 180명 직원 중 3분의 1이 엔지니어인 이유죠. 

글로시에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집결지, glossier.com


물론 오프라인 매장도 있습니다. 단, 오프라인 매장은 크로스 셀링, 업셀링을 위한 ‘판매 푸쉬 채널’이 아닌 ‘디즈니랜드’와 같은 개념으로 글로시에를 ‘매력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스토어’입니다. 더 확장할 계획도 없습니다. 확장한다고 해서 글로시에가 중요시 생각하는 ‘관계와 경험의 확장’의 가치를 균일하게 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LA와 뉴욕 두 곳에 위치한 글로시에 플래그십 스토어 


글로시에가 런칭 초기부터 지금까지 뷰티 업계에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경쟁 브랜드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모든 소비자가 적극적인 홍보대사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뷰티 브랜드가 가야할 길을 ‘깊게 바라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로벌 커뮤니티의 결합 속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현재 글로시에 비즈니스의 70%가 입소문에 의해 창출되는 것을 보면 ‘뷰티를 민주화한다(Democratize Beauty)’라는 글로시에의 비전이 뷰티 소비자들의 마음에 큰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덧칠이 아닌 색을 가지고 노는 유쾌한 놀이로서의 색조, 스톤브릭 


처음 이마트 브랜드전략팀으로부터 함께 새로운 색조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1천~2천원에도 아이쉐도우를 구입할 수 있는 세상에 과연 새로움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Back to Basic.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레드오션으로 보이는 이 시장에도 여전히 소비자가 가려운 지점은 있지 않을까. 


허무하게도 그것은 ‘색’ 그 자체의 ‘다양성’과 ‘감도’였습니다. 저가의 색조 시장은 가격은 저렴하나 내가 원하는 ‘색’이 턱없이 부족했고, 고가의 색조 시장은 색의 감도와 퀄리티는 높지만 접근성이 높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덧칠을 통한 자신감’과 ‘유혹’의 코드에 그치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 왔습니다. 

유혹의 코드, 덧칠을 통한 자신감의 상승이라는 메시지들 위주의 색조 브랜드들


얼굴에 덧칠함으로써 거짓된 자신감을 심어주는 수단이 아닌, 색 그 자체로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주는 영감의 주체가 색은 아닐까. 정의했습니다. 남성을 유혹하는 코드로서의 수동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의 만족과 유쾌한 놀이로서의 뷰티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밀레니얼 세대의 뷰티. 가격이 아닌 색 그 자체와 텍스쳐로 말을 걸어오는 새로운 색조 브랜드, 스톤브릭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압도적인 색의 다양성과 유쾌한 컬러 플레이라는 색조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스톤브릭


색조의 본질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마트라는 기업이 가진 혁신에 대한 진정성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마트는 대형 할인마트이기도 하지만, 노브랜드, 피코크, 스타필드 등 지금 시대의 소비자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혁신 기업입니다. 스톤브릭이 50% 가격 할인, 묶음 팔기 등의 전술이 아닌, 색이라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새로운 장을 펼쳐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두가지 밖에 없다. 마케팅 그리고 혁신이 그것이다"

(Business only has two functions - Marketing and Innovation.) 

- 피터 드러커 


혁신이라는 단어는 갈수록 ‘혁신적이지 않고 범상적인’ 단어가 되어갈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업데이트되는 마케팅 신기술들, 전략과 전술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속해 있는 ‘업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있을까요? 남과 비교해 어떻게 더 두드러질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이 시대의 소비자가 원하는 진짜 가치와 니즈를 깊이 들여다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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