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저기까지
가기를 겁내했던 것일까
허리춤에 매달려 있을
부패한 감정들을 떨어내고 싶다.
곧은 정신으로
한 발 앞으로 나가고 싶다.
하품 한 번에 시름 날려 버리고
두 발 나가고 싶다.
등을 쭉 기대
다리를 뻗어 보면
날 둘러싼 이곳이 넓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어제 먼 곳 떠난 사람은
이 사실을 몰라 급히 떠나버렸나
뻣뻣해진 어깨며 무거워진 허리를
퉁퉁 치며 차가운 냉수로 속을 달랜다.
힘들다 한 계절은 겨울인데
따뜻해진 봄에
나가는 건 무슨 이유인가
계절이 봄이든 겨울이든
중요했던 건
물리적 온도의 문제가 아니다.
차가워진 마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 냉수 잔을 들어
괜히 빙빙 돌리다
그냥 내려놓는다.
이제는 더워질 바람에 서늘해진
내 마음을 뎁히고 싶어
창문을 열어 놓는다.
돌아와야 할 것은
자연스레 문 사이로
들어올 것이다.
나가야 할 것은 역시
슬며시 나갈 것이다.
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어제를 보낼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보다는 모래를
기다려 볼 것이다
하루라도 더 지나야
더워진 바람이
콧속으로 입속으로
땀구멍 속으로 귓구멍 속으로
들어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