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부당해고
안녕하세요. 최앤리의 변변찮은 최변입니다.
성폭력, 성폭행을 저질러 처벌을 받은 사람들도 밥벌이를 위해 근로행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자영업을 할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회사의 근로자로서 일을 할 것입니다. 동료직원들이나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회사에 성범죄자가 버젓이 옆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소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한 개인의 입장에서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없고,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다고 생각하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과연 범죄자, 그것도 흉악범죄라고 할 수 있는 성범죄를 저지른 직원을 회사는 정당하게 해고할 수 있을까요?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에 징벌(이하 "부당해고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고에 대한 요건으로 법에서 정한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사유가 "정당한 이유"인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판단할 뿐입니다. 판례에서도 판단기준을 추상적인 문장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사회통념상 근로계약을 계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
구체적인 판단은 사업의 성격과 목적,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 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당해고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어 적법한 해고가 된 사례들을 살펴볼 의미가 있겠습니다.
i) 근로자가 근로계약상의 근로제공의무를 거절하거나 해당 업무에 임하지 않는 경우
ii) 결근 및 지각 조퇴를 반복하여 업무에 심각한 지장을 주는 경우
iii) 근로자가 업무에 필요한 능력과 적격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하자 있는 급부(보험판매업을 영위하는 영리법인의 소속 근로자가 다소 낮은 정도가 아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저한의 실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제공하거나 정상적인 작업능력을 밑도는 경우
iv) 범법행위, 부정행위 등으로 업무의 성격이나 직무에 비추어 종업원 또는 직원에게 요구되는 신뢰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동료근로자에 대한 폭력행사 등이 있는 경우
문제는 위와 같은 행위로 일회성에 그치거나 빈도가 너무 적은 경우에는 정당한 해고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중요한 기준은 어떠한 행위로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2019년에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성범죄를 저질러 해고를 당한 직원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서 인용된 비율이 무려 30%입니다. 일반 상식으로 볼 때 가히 충격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사건을 살펴보면, 회식 술자리 후 만취한 동료직원에 강제로 입 맞추는 등 성추행한 것을 이유로 해고를 하였는데, 해고당한 직원이 부당한 해고라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여 이겼습니다. 당시 노동위원회는 우발적 행위이고, 의도적, 반복적 행위가 아니었고,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으니 징계사유는 맞으나 해고는 과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더 심각한 사례도 있습니다. 은행 직원이 지점 안에 앉아있던 만취한 13살 미성년자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하여 벌금형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은행은 이 직원을 당연히 해고했는데요. 법원에서는 이 역시 부당해고로 판단했습니다. 주된 이유로는 다른 동료들은 성범죄 사실을 몰랐다는 점, 해당 사건으로 업무 진행이나 협력업체 관계 등에서 지장이 없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일반인의 법감정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만 법원은 성범죄 행위 자체를 당연해고 사유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 취업규칙에 성범죄 처벌을 받은 경우를 해고사유로 정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은 ‘개인의 성범죄 행위’와 ‘회사의 피해’를 철저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만약 직원의 성범죄 사건이 알려져서 회사의 명예가 실추되어 직원들이 집단 퇴사를 하거나 거래처 등과 계약이 종료되는 등 그 성범죄 행위로 회사에 직접적인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된다는 것이죠.
앞선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에서 법원은 “처벌은 독점적인 형벌권을 보유하는 국가가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실현되어야 한다.”라며 사적 영역에서 범죄를 이유로 사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성범죄 전과나 행위가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되는 업종이 있습니다.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나 기관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해 해고를 해도 부당해고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일, 다수의 여성과 아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에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범죄 전과가 있는 남성이 취업을 한 경우에는, 명백히 아동을 교육하는 사업의 성격과, 해당 사업에서 아동을 직접적으로 교육자라는 상급자의 위치에서 가르치고 있는 근로자의 지위, 기업 내의 위계질서, 혹은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서 해당 교육기관이 입게 될 사업상, 명예상의 침해 등을 생각해 본다면 해고에 충분히 정당한 이유를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