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ypt | Cairo
이집트인은 낯선 이에게 관심을 베풀고, 환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카이로에서 택시를 타면 수다스러운 택시 기사뿐만 아니라 스쳐 가는 자동차의 운전자도 반가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든다. 관광지가 아닌 동네의 작은 시장에서 지나치는 사람에게도 “웰컴 투 이집트”란 인사를 자주 듣는다. 같은 골목에 사는 6살 아흐메드와 매일 집 앞에 놀고 있는 아이들 무리는 내가 나타나면 골목에서 아파트 입구까지 따라온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수십 번씩 나에게 외친다.
“하이”, “헬로”, “하이”
물론 모든 이들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지 않고 반기는 것은 아니다. 관광국가인 이집트에서는 관광객 대상 사기꾼을 만나 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가 앞으로도 기억할 이집트는, 길거리와 골목마다 낯선 이에게 ‘차’ 한 잔을 권하고 자신의 식사를 나누는 따뜻하고 아련한 곳이다. 심지어 코로나 19 이전에는 카페나 길에서 처음 만나는 이집트인이 물 담배(시샤(Shisha) 혹은 후카(Hookah))를 권하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코로나가 닥치면서 물 담배는 카페에서 금지되기도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금지여도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은 이집트답게 일부 레스토랑이나 남성의 전유물과도 같은 담배 냄새가 그윽한 뒷골목 카페에서 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17년 1월 초 처음으로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카이로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가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카이로 국제공항은 비행기 표가 없으면, 한 마디로 승객이 아니면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가족, 친구, 여행객을 마중 나온 이들은 어떠한 악조건의 날씨와 상황에서도 터미널 건물 바깥에서 기다려야 한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이집트인 사이에서 친구가 나에게 외쳤다.
“안녕!, 민나와라 머스르(Menawwara Masr, 당신의 빛이 이집트를 밝히다)”
이집트에는 손님을 환영하고 반기는 인사말이 다양하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As-salāmu Aleikum (하나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기를)”, “살람 (Salam, 평화)”, "함두릴라 알라 앗살람(Hamdulillah ala al-salamah,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다)", “아흘란 와 싸흘란(Ahlan wa sahlan, 환영합니다)”, “나와르트 머스르(Nawwart masr, 당신의 빛이 이집트를 밝혔다)”, “머스르 민나와라 빅(MaSr menawwara bīk, 당신의 빛으로 이집트가 밝혀졌다)”
나는 아직도 처음 공항에서 카이로 중심에 있는 섬인 ‘자말렉(Zamalek)’으로 이동하면서 본 도시의 모습을 생경하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스크 돔을 중심으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화려한 무늬 장식의 첨탑들과 마치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벌거벗은 붉은 벽돌 아파트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불분명한 도로를 바삐 움직이는 사람과 다양한 동물. 차로 빼곡한 도로 옆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전광판에는 대개 홍해나 지중해에 있는 고급 빌라 광고나 이집트인의 현대 파라오이자 국민영웅인 축구선수, 일명 ‘모살라’, 모하메드 살라(Mohamed Salah)가 나오는 광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이로는 아랍어로 ‘알 카헤라(Al-Qahirah)’라고 불리는데, 10세기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한 파티마 왕조(Fatimid)가 969년, 튀니지에서 카이로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승리’라는 뜻의 ‘알 카헤라’라는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고 이슬람이 이집트에 뿌리를 내렸다. 정녕 신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일강을 가진 이집트는 축복을 받은 만큼 많은 정복자의 침략을 당했다. 아시리아, 사산조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제국, 아랍 이슬람 제국, 오스만 제국, 프랑스, 영국까지. 위대한 정복자로 이름을 남긴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 많은 이들이 카이로를 원했기에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통치를 받았다. 카이로는 고대 파라오와 이슬람교의 흔적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유대인의 흔적도 남아있다.
수직으로 카이로를 가로지르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서쪽인 기자(Giza) 지역에는 2톤에서 20톤에 이르는 석회암 230만 개를 쌓아 올려 만든 대피라미드(Great Pyramid)와 스핑크스가 도시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나일강 동쪽 지역은 ‘천 개의 첨탑의 도시(The city of thousand minarets)’라고 불리며,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인 9세기에 세워진 ‘이븐 툴룬 모스크(Mosque of Ibn Tulun)’, ‘알 아즈하르 모스크(Al-Azhar Mosque)’,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Mosque of Muhammad Ali)’를 비롯한 수많은 모스크의 첨탑이 카이로 하늘을 장식한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 다음으로 유명한 대표 관광지는 전통시장인 ‘칸 엘 칼릴리(Khan El-Khalili)’이다. 첫 이집트 여행 당시 나는 상대적으로 교통이 혼잡하지 않은 평일 오전 시간에 유명한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카이로에서는 모든 일이든 가능한데 자칫해서 일정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악명 높은 카이로의 교통 체증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이로 동쪽, 이슬람 지구(Islamic Cairo)에 위치한 칸 엘 칼릴리는 마치 중세 시대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세월이 쌓인 골목에 천 개 이상의 상점이 늘어져 있는 시장이다. 1382년, 칸 엘 칼릴리 왕자가 대상들을 위해 세운 숙소들을 중심으로 상점이 세워졌는데, 1455년에 세워진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나는 우버를 타고 알 아즈하르 도로에 내려 알 후세인 모스크 (Al-Hussain Mosque) 방향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스크 앞 광장 옆으로 즐비한 노천식당은 직원들이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며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식당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앤티크 가게, 카페, 금은방, 여행자 기념품점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게 상인들은 각자 저만의 방식과 멘트로 여행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내 가게에 와 줘요(Please see my shop).” “일 분, 단 일 분이면 됩니다(one minute, only one minute).”, “내 가게에 당신이 찾고 있는 물품이 있어요. (I exactly have what you are looking for)”
칸 엔 칼릴리는 전통시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엘 피샤위(El-Fishawi)’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다. 1771년 압둘라 엘 피샤위가 문을 열어 집안 대대로 가업을 잇고 있는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숍인데, 이집트 왕과 공주를 비롯하여 나폴레옹, 롬멜,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과 장 폴 샤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이 엘 피샤위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다녀가기도 했지만 엘 피샤위는 무엇보다 이집트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나깁 마흐푸즈(Naguib Mahfouz)’와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카페로 유명하다. 나깁 마흐푸즈의 많은 작품이 골목과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 글들이 여기 엘 피샤위에서 쓰였다.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카이로의 이 오래된 카페에 앉아 골목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보통 사람들은 설탕을 가득 넣은 홍차(현지에서는 ‘샤이’라고 부름)에 신선한 민트 잎을 띄운 차를 마시거나, 바닥에 커피가루가 가라앉아 있는 진한 아랍식 커피와 함께 다양한 향의 물 담배를 즐긴다. 며칠을 같은 자리에 앉아서 물 담배 연기를 연신 뿜어내는 듯한 배도 나이도 지긋하신 동네 아저씨들, ‘타울레’(Tawleh, 백가몬이라고도 부르는 보드게임의 일종)’에 빠져 즐겁게 떠드는 젊은이들, 엘 피샤위의 아랍 전통 목가구와 조명, 거울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카페에는 손님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이목을 끌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각종 장신구와 파피루스를 팔러 다니는 잡상인, 헤나 사진을 보여주며 가격을 흥정하는 여성들. 거리의 악사들은 어느새 카페에 앉은 사람들과 뒤섞여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굽이굽이 엮인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길을 잃은 듯한 착각이 든다. 아까 지나갔던 것 같은 골동품, 금은방 가게인 것 같은데 다른 가게이다. 다양한 가게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세 갈래의 골목이 연결된 조그만 광장에 다다랐다. 광장 구석 낡은 가구에 앉아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동네 상인들은 두리번거리는 나를 반겼다. 40~50대 아저씨부터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이집트에 왔으니 꼭 이집트식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고 앉기를 권유한다. 아랍 사람에게는 아무리 거절하더라도 통상 세 번까지 권유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들었는데, 나는 세 번 이상 거절했으나 그들의 식사 초대는 진심이었다.
나는 어느새 오늘 생전 처음 만난 동네 아저씨, 할아버지들과 같이 에이시(Aysh, 이집트인의 주식인 화덕에 구워낸 빵), 풀(Foul, 파바 콩으로 만든 이집트식 콩 스튜), 타히니(Tahini, 참깨를 갈아 만든 고소한 맛의 소스), 따메야(Tameya, 중동 지역에서 ‘팔라펠’이라고도 불리며 으깬 콩을 둥근 모양으로 튀긴 음식)를 먹고 있었다. 나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한 이들은 칸 엔 칼릴리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2011년 혁명 이후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며 이제 더 이상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집트 전통 물품과 기념품을 판매해 사업을 운영하기는 어렵고, 최근에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중국제 공산품을 더 많이 팔고 있다고 푸념하셨다. 나는 한 아저씨가 운영하는 보석상에서 손 모양의 ‘함사(파티마)’ 목걸이를 구매했고, 아저씨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사건 사고 없이 좋은 일들과 행운을 만나기를 기원했다. 난 그렇게 칸 엘 칼릴리에서 함사 목걸이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시 골목길 찾기 혹은 길 잃기에 빠졌다.
칸 엘 칼릴리의 중심 도로인 모에즈(Al Mo’ez st) 거리에 위치한 모스크와 마드라싸(학교)를 방문하고, 먼지가 쌓인 가구와 조명, 유리 공예품, 물 담배 기구, 아랍 전통 악기, 다양한 향수와 향신료, 베두인 텐트, 보석과 장신구, 타일, 파피루스까지 없는 게 없는 칸 엘 칼릴리를 구경하다 보니 반나절이 금방 흘렀다. 다시 허기가 찾아와 빵을 하나 사서 먹으며 걷고 있을 때였다. 마침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를 하고 있던 이집트 초 중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빵 가게를 지나고 있었다.
몇몇 부끄러움을 타는 여학생들이 나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헬로”, “하이”를 외치며 다가왔다. 이집트인의 이방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내 주위를 둘러싸 나에게 빵을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반지를 선물로 주면서 사랑 고백을 한다. 어느새 나는 칸 엘 칼릴리 길 중앙에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인파를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황한 순간 우리 앞에 하얀 제복을 입은 경찰이 나타났다.
경찰은 아이들에게 자리를 뜨라고 소리를 질렀고 경찰은 나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전혀 범죄를 지은 게 없었지만 나는 초조해하며 경찰을 따라갔다. 몇 분을 걷다 보니 제복을 입은 경찰 무리가 보였고, 나는 일단 사기꾼이나 이상한 놈은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는 나를 나무 그늘 아래로 데리고 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나에게 그는 얼굴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웰컴 투 이집트!”
이집트는 관광 대국답게 관광 경찰이 따로 있다. 대표적인 관광지에는 관광 경찰이 배치되어 있고, 안전과 치안 관련 문제 발생 시 관광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좋다. 이집트에 온다면 당신은 때로는 관광지에서 사기를 당할 테고 도로 위를 무자비로 달리는 차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이집트인의 친절함에 당황스럽기도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순간에도 나는 당신이 이집트에 온다면 당신의 빛을 환히 밝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당신의 빛이 이집트를 밝힌다고 여기고 환영할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