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키드 Mar 10. 2023

OTT 시대의 영화 보기

주의 산만한 자의 영화 보기

한때 나의 주말 밤을 온전히 책임져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영화였다. 자정 무렵 찾은 영화관은 더할 나이 없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장소였다. 한적하게 영화관 좌석을 차지하고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으면 전체를 빌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그 추억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이제는 주말 밤 방구석에 처박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와 함께 나의 주의산만한 영화 보기의 정도도 심해졌다. 어수선한 성격에 더해 한시도 가만 있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지난 주 나는 마치 급한 숙제를 마치기라도 하듯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봤다. 무려 2주에 걸친 시간이었다. 보다 껐다 그러길 여러 날 반복하더니 겨우 끝냈다(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요즘 나의 방구석 영화 보기가 대체로 이렇다. 끈덕지게 화면을 주시하기보다는 주변에 시선을 뺏기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영화가 다른 예술과 달리 유독(?) 주의 산만한 보기가 허용된다고 하지만 OTT로 보는 영화 관람은 그 정도가 심한 것 같다. 이런 경향이 나만의 문제인지 다른 이들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산발적인 영화 관람의 결과는 단편적인 이미지와 대사 몇 마디가 다였다. <헤어질 날들>은 유독 내게 그런 영화였다. 문어체적 대사와 함께 영화 말미 낙조의 이미지만 남았다. 붕괴된 것은 주인공들뿐만이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이런 주의산만한 영화 경험이 때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발터 벤야민이 말을 빌리자면 “주의 산만한 대중은 예술작품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여 여기에 자기 삶의 리듬을 전달하고 자신의 흐름으로 예술작품을 파악한다.” 나 또한 영화 관람 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저 대사와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 차이가 파국을 불러왔을까 질문이 떠올랐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더 산만한 영화 관람 환경에 처해 있다. 극장이라는 장치 안에서만 관람하던 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오히려 주의산만한 영화 관람을 이제는 기본값으로 모든 이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영화 보기가 특별한 체험도 아니고 그저 출퇴근 시간 내지 할 것 없는 무료한 시간에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이 되어버렸다. 이런 시절에 영화 관람은 주목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영화 제작자의 바람과는 반대로 가는 것 같다. 대중은 더 산만해지고 습관처럼 딴짓거리를 하면 논다. 순간순간 관심을 바꾸는 아이마냥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런 놀이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습관처럼 이번 주말도 영화를 볼 거 같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작가의 이전글 어느 뉴스 성애자의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