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우리 자매의 말싸움은 일상이다. 별거 아닌 일로 투닥거리는 게 거의 매일이다. (남들도 그럴까?) 얼마 전에는 버섯머리가 사준 떡을 소분하면서 동생이 다음날 먹을 떡을 빼두었는데, 그걸 냉동실에 왜 넣느냐, 알아서 하겠다. 내일 먹을 거면 실온에 둬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겠다. 며 한참을 투닥거렸다. 결국 동생이 한 수 접고 실온에 빼두니 이번에는 왜 봉투 입구를 오므리냐, 열어둬라. 떡이 마르면 안 된다. 숨 쉬게 해 둬라. 알아서 하겠다. 왜 말을 안 듣냐로 2차전을 했다.
엄마는 우리 자매와 하는 일을 막내 삼촌과도 똑같이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고 거의 십수 년 만에 큰 이모네 오빠들도 만났다. 나는 가게를 지키느라 동생만 참석했는데 거기에서도 엄마랑 막내 삼촌은 내내 말싸움을 했다. (일상이다.) 지켜보던 큰 이모네 둘째 오빠가 말했단다.
-두 분은 여전히 싸우시네요. 보기 좋아요.
나도 이제 엄마랑 동생이 싸우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오늘도 싸우네. 보기 좋아.
엄마는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는 만큼 우리의 잔소리를 듣는데, 그걸 이모와 삼촌들에게 그대로 반복한다. 마치 그런 말을 들을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그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선 또 다른 일도 있었다. 큰 이모의 첫째 아들은 이제 쉰이 넘었는데, 큰 이모는 그날도 오빠를 애기라고 했다. 엄마도 우리 집 둘째를 애기라고 한다. 몇 해 전 마트 배달직원이 실수로 아래 층에 물건을 두고 갔는데 엄마가 "집에 지금 애기 밖에 없어요. 다시 와서 윗 층에 올려다 주세요."라고 했다. 결국 다시 짐을 올려두려 온 배달직원이 동생을 마주하고는 당황한 듯 "집에 애기 밖에 없다고 했는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했다.
큰 이모네 쉰 넘은 애기, 우리 집 서른 넘은 애기. 동생이 카톡으로 말했다. '지금 여기 애기들 밖에 없어.'
엄마와 말싸움할 때 논리에 막히면 엄마가 결국 하는 말은 "너도 나이 먹어 봐." 그럼 나의 대답은 "엄마, 이제 나도 나이로는 어디 가서 안 밀려." 엄마는 우리를 아직도 어린애들이라고 표현한다. 유사 표현으로 “너네 젊은 애들”이란 말도 자주 쓰는데 나는 이제 그 젊은 애들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엄마, 이제 우리 집에 어린애들은 없어. 예전 임신 중이었던 직장 동료가 그랬다. 육아는 처음 40년이 힘들다고. 엄마는 그래서 동생을 애기라고 하는 걸까?
동생에 대한 어린 이미지는 내 친구들에게도 남아있다.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 가게로 찾아온 친구들은 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친구들 머릿속의 동생은 꼬맹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 자기보다 키도 큰 애가 불쑥 나타나버렸으니. 어딜 가나 동생은 애기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군.
우리가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이제 우리 집에서 가장 약한 사람은 부모님이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십 년 전에는 어딘가 아파도 귀찮다거나 별거 아닌 거 같다는 핑계로 대충 넘길 수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등을 떠밀어서라도 병원에 보낸다. 어떤 병이든 반드시 징후가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 신호를 최대한 놓치지 않고 발견하고 싶다. 그래서 작은 신호에도 병원에 가기를 권한다. 호들갑이라도 상관없다.
지난주 때를 놓친 단풍 구경을 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닭강정을 사 가지고 대공원에 놀러 갔다. 피크닉 매트를 깔고 닭강정을 먹고 우리 작년에도 저기에서 그네 탔지? 하면서 올해도 그네에서 발을 굴렀다. 공원을 산책하고 작년에도 갔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빵을 먹었다. 이런 나들이에서 이제 가장 많이 카메라 앞에 서게 되는 건 엄마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두 번째 증거 아닐까. 그렇지만 엄마는 심심찮게 동생을 카메라 앞에 세우면서 나한테 “@@이 귀엽지?”하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동생은 엄마에게 평생 애기일 거야. 예쁜 단풍은 없었지만 즐거웠던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런 얘길 했다.
-엄마는 죽으면 납골당도 싫어. 그냥 바다에 뿌려줘.
-나도 바다에 뿌려줘.
-나는 산에 뿌려줘.
-너네는 어린애들이 엄마한테 그런 얘길 해.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어린애들과 엄마. 오늘은 즐거웠다. 당장 오늘 밤부터 또 일상적인 말싸움을 하겠지만, 내년에도 건강하게 단풍 구경하러 오자. 그네도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