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에 착각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공정하다는 착각,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 상속과 증여에 대한 당신의 착각, 올바름이라는 착각, 가족이라는 착각, 나를 다 안다는 착각,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읽었다는 착각, 생각한다는 착각, 늙는다는 착각, 알고 있다는 착각, 평등하다는 착각, 게으르다는 착각.
등등등. 급기야는
모든 게 착각이었다. 까지.
책 제목만 보면 인생은 착각으로 구성된 세계 같다. 책 제목에는 착각 시리즈만큼 지독한 유행이 있는데 요즘은 뭐가 그렇게 다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상처받은 어린이고 무슨 일을 해도 괜찮고 그런지 모르겠다. 책 제목만 보면 나에게만 관대하고 타인에게 적대적인 세상 같다. 그래도 된다는 거대한 착각이 서점가를 점령한게 아닐까. 그런 책이 주고 싶어 했을 메시지와 정반대 메시지가 읽힌다.
거대한 착각 뭉치 중 내가 확실히 동의하는 한 가지는 내가 무언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나는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건 분명하다. 설령 일부를 정확할 기억 할지라도 전제로 보면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 건 불확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평생에 걸쳐 꾸준하게 속아 넘어가는 착각은 배고프다는 착각이다. 지금도 배가 고픈데, 이것은 위에서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뇌에서 보내는 가짜 신호다. 정말 배가 고픈 게 아니다. 그렇지만 또 속아 넘어간다. 벌써 내 안에서 착각을 두개나 발견했다. 좀 더 잦아보면 더 많은 착각을 찾을 수 있고. 결국 서점가를 점령한 착각들은 착각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게 될까?
어찌 됐든 확신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은 확신해도 된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유명한 영화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들이 허다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는데.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지?
확신은 줄고 불확신이 늘어가서 나는 "그런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유부단하거나 심드렁해 보일 수도 있으니 주의하려고 하지만, 무의식 중에 그렇게 말하게 된다.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입에 잘 붙는 말이니까.
20대 나는 생각이나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몇몇 선배들을 동경하거나 열등감을 느끼며 확고한 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더랬다. 애를 썼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보니 뚜렷한 세계관이 있지만 언제든 바꿀 준비가 된 사람이 되고 싶다. 우선 '확고한 세계관이 있지만'에 실패했으니 곤란하군.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동진 님이 "나이 든 사람들은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라 그냥 늙은 거예요."라고 해서 꽤 수긍하면서도 조금 슬펐는데 유시민 작가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보다 지혜롭지는 않다. 지금 젊은이들과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는 척 조언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나이를 먹으면 지혜로워진다는 생각을 착각이다. 나이가 지혜를 담보해주진 않는 게 맞지. 지위가 교양을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을 되짚어보니 나이가 들수록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서점에선 그렇게 착각을 외치고 있나? 내가 괜한 오해를 했나.
모든 게 착각이었다.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