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대해 생각하면 <금주 다이어리>에 나온 이 문장을 반드시 떠올리게 된다.
AA는 알코올중독자가 두 번 다시 '평범하게'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유를 오이와 피클에 비유한다. 오이가 피클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일단 피클이 되고 나면 절대 오이로 되돌릴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자. 내가 오이였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나는 어엿한 피클이 되었다.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대상이 바뀔 뿐 쉽게 다른 것에도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 불안도가 높으면 덕후가 되거나 수집벽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금주 다이어리>에도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불안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 때문에 불안했다. 나는 별것도 아닌 일에 공황을 느끼곤 했다. 전화나 이메일로 (약간) 나쁜 소식, 짜증 나는 소식을 들으면 뱃속에 불안의 매듭을 하나 생겼다. 불안은 촌충처럼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을 죽이거나 적어도 당분간 무감각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뇽블랑을 퍼붓는 것이었다.
중독은 불안을 희석하는 장치가 되고 덕질도 그중 하나다. 잠시 잊고 빠져들 때 조금은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깊이 스미지 말아야 한다. 덕질을 하는 이유는 삶의 쓴맛을 희석할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무엇이든 깊게 파면 반드시 쓴맛에 닿기 마련이다. 파인애플을 오래 먹으면 혀의 단백질이 녹는 것처럼. 하지만 독서만큼은 그럴 위험이 매우 적다. 대체로 단맛뿐이다. 평화로운 덕질. 오직 행복하기만 한 덕질. 이것이 나를 홀려버린다.
나의 덕질은 역사가 깊다. 시기별로 음반, 책, 빵, 화분 등을 사 모으곤 했다. 한때 연예인 덕질도 했다. 굿즈 없던 시절의 20세기 소녀는 다행히 큰돈을 쓰진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히 나의 구 오빠는 사건 사고를 일으키지도 않아 덕질 인생에 상처는 없었다. 구 오빠 덕분에 라디오에 빠져서 나는 라디오 키드로 살았고 세종문화회관도 처음 가봤다. 라디오 덕분에 올드팝도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 덕질의 나비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분명히 나는 다시 오이가 될 수 없는 피클로 살고 있다.
유튜브 덕분에 남의 덕질을 감상할 기회가 많아졌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취향과 덕질거리가 있는지 알게 된다. 우리 주변에 조용한 탐조인 얼마나 많은지, 아파트 단지에는 참새, 까치 외에 곤줄박이, 직박구리, 물까치, 딱새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동네 산책을 할 때 귀를 기울여 다양한 새소리를 듣는다. 그 다양한 덕질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니 덕질이 나를 구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자리에 앉자마자 심각하게 물었다.
우리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뭘 먹고 살아야 하지?
이 질문은 요즘 누굴 만나든, 쉽게 나오는 말이다. 정말 뭘 먹고 살아야 하지? 지금 벌어지는 변화도 따라가지 못하는데 미래에 대해 내가 뭘 알겠어. 일론 머스크는 “그냥 좋아하는 일 하세요.”라고 말했는데. 마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좋아하는 일이나 하세요.처럼 들린다.
직업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직업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이제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택의 여지 없이 그냥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맞는 시대일지 모른다. 거칠게 혹은 못되게 말해서 ‘어차피 망했어. 좋아하는 거라도 해.’시대 일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때문에 좋아하는 일이 나를 구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희망의 좁은 문이 있을지도. 오이로 돌아갈 수 없는 피클 시대에는 덕질이 답일지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빛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