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진실과 단정한 거짓

by WonderPaul

최근 2년 내 읽은 소설 중 가장 여운이 남는 이야기는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대체로 이 책을 권한다. 취향이나 독서량과 상관없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 속에 섞여 있는 거짓말이란 장치가 대단히 특별하진 않다. 다만 그 설정이 10대 청소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사람들은 거짓말하고 싶은 욕망과 진실을 말하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기엔 그 나이가 좋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진실과 거짓을 말하는 법이 나보다 능숙하다.


진실과 거짓을 조절하는 것만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래서 조절하는 법을 잘 모를 땐 무조건 말을 아끼는 게 유리하다. 지난주에 성가대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앞자리 권사님이 손짓을 하시며 가까이 부르셨다. 2주간 딸을 만나러 중국에 다녀오셨는데, 중국에 있는 동안 내 생각이 많이 났다며 보고 싶었다고 인사해 주셨다. 저도 앞자리가 허전했어요. 하고 인사했는데, 슬쩍 가방에 무언가를 넣으시면서 “커피랑 먹으면 맛있더라구요. 생각나서 샀어.”라고 하셨다.


항상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런 시간에는 말도 준다. 말이 많아지는 건 마음에 걸리는 게 많거나 생각 조절 능력을 잃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최근에 두 친구를 만났는데, 한 명은 말을 가리게 해서 좋았고 한 명은 말을 가릴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말을 가려야 할 때는 말을 정리하면서 내 마음도 정리돼서 좋다. 빗장을 풀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좋다. 공통점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게 좋은 거짓말일지라도.


회사에서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새 일곱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방금 헤아려 보고 놀랐다.) 입사 때부터 그렇게 하기로 명령어를 입력했다. 덕분에 다행스럽게 여기는 일이 늘었다. 불평이나 속단을 혼자 해결하면 후회할 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꼭 필요한 말 외엔 말을 줄이다 보면 자연스레 말에 신뢰가 쌓인다고 느낀다. 그래서 실제 나보다 더 진중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 오해라면 바로잡지 않는 게 맞지. 회사에서 하는 말이란 게 90%는 업무 관련이기 때문에, 나에겐 거짓말을 할 필요가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다. 그게 좋은 거짓말일지라도.

사람은 하루 평균 한 두 번은 거짓말을 하는데, 대체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라고 한다. 미국 미시간 주립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60%는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조차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거짓말과 진실을 적절히 뱉으면서 원만한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노련한 조절 능력을 익히고 있겠지.


가족끼리 거짓말할 일은 적지만 엄마는 특히 더 솔직하다. 샘이 많은 엄마가 TV를 보면서 얼마나 사소한 일까지 샘을 내는지, 사람들이 모르는 게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쉽다. 엄마가 이렇게 웃긴 사람인지 우리만 알기는 아깝지만, 또 엄마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생각하면 다행이다. 한 번은 엄마랑 서울에 있는 안과에 갔다가 근처 유명 연예기획사 건물을 가리키며 “엄마, 저기야. 저기가 △△△ 회사야.”라고 했더니 “저렇게 부자야?”라며 깜짝 놀라는 엄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농담으로 “왜, △△△도 샘이 나?”라고 물었는데, 엄마는 바로 “으응.”이라고 대답했다. 묘하게 나른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으응”이라는 대답은 “왜, 샘이나?”라는 질문과 세트로 붙어 다니는 우리 집 관용어구다. 엄마가 시샘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순간은 언제나 우리 자매 웃음 버튼이다. 웃음은 거짓보다 진실과 더 가까운가 보다.


그럼, 유쾌한 진실과 단정한 거짓을 조절하는 능력, 적절한 때에 드러나고 공유하는 능력은 원만한 사회생활뿐 아니라 즐거운 가정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내일은 또 약속된 평화가 있는 날이다. 벌써 기분이 좋다. 진실하게 사랑받는 막내로 최선을 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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