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편견, 그 집요한 역사.
"사실은 말이야, 우리는 너를 싫어했었어."
라는 말이 오늘 달리는 동안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어제저녁 동문 모임에서, 다들 전공의 수련과정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던 중, 내가
"그 선배가 저보고 너 내과 들어오면 아주 괴롭혀줄 거라고, 절대 내과 들어오지 마라고 그랬었어요"
라며 (다 지난 일이니) 농삼아 말했는데, 그 선배랑 같은 학번인, 어제 자리를 함께한 선배가
"사실, 우리는 너를 싫어했었어. 정말 싸가지 없어 보이는 이미지였지"
라고 했다. 내과에 오지 마라 했는데도 말을 안 듣고 내과에 지원해서 당당하게 합격한 나를 미워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1년 차에게 환자 30명을 주치의로 주었다고. 동기들은 대부분 환자를 3-4명 정도 배정받았었는데 나만 왜 그랬는지 15년이나 지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 나의 싸가지 없는 이미지 탓에 받은 불이익은 이것만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에는 같은 반이지만 좀 놀았던(?) 아이가 "너 진짜 싸가지 없다"며 나로서는 매우 영문도 모르는 이유로 시비를 건 적이 있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개입해서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싸가지 없어 보이는 것이 무엇일까? 에 대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 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인기가 많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남에게 친절한 말투가 베여있고 잘 웃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 친구와 나의 인격에 큰 차이는 없었다.
어젯밤의 상황으로 다시 넘어가자.
싸가지 없는 이미지였다는 선배의 말에 또 다른 선배가
“그건 이미지였지. 사실과는 다르잖아. 다만 걸음걸이가 좀 낭창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라고 했다.
걸음걸이와 싸가지 없다는 인격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사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얘는 좀 낭창할 것 같다 “라는 이미지가 ”얘는 낭창해 “라는 집단 편견으로 받아들여져서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를 보면 주인공이 “금발은 멍청하다”라는 편견을 깨고자 노력하는데, 그렇듯 외모와 지능이라는 전혀 상관없는 두 항목이 마치 필요충분조건인 양 받아들여지는 부당한 편견은 우리 사회 곳곳에 분명 존재한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귀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를 화려하게 하고 진료를 하는 의사는 실력이 없다고 평가되는 경우도 비슷한 예시이다.
아직도 나의 걸음걸이는 여전히 낭창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낭창하게 걸은 적이 없으므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의 모습은 의도대로 바꾸기가 어렵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싫어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쾌한 상념을 남긴다.
나를 아는 사람 모두가 나에게 호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미움받았던 기억은 여전히 아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부정적 이미지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받아 들이기가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15년 전의 나를 위로하며 달렸다.
<이 글에 쓰인 경상도 방언 풀이>
* 싸가지없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나 버릇이 없다.
* 낭창하다: (경상도에서의 뜻) 무언가 속엣것을 감추며 내숭 떠는 행동거지나 태도가 있다, 혹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늘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