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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Jan 08. 2024

모든 것이 너무 완벽했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너와 나. 우리.

너무 행복해서 조그마한 것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만일 아이가 생기면 자주 다투게 되지 않을까?

늦게 결혼해 서둘러야 할판에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아이 갖기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과정도 결과도 행복하기만 한 영화, 드라마, 책만 봤다. 


2022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베니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몰래 준비했던 빼빼로 한통을 주어야지' 생각하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여느 날 이었다. 일을 하느라 바빠 병원에서 돌아온 베니를 대충 반겨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던 내 옆으로 베니가 의자를 끌어와서 앉았다.

"쑤, 놀라지말고 들어."

키보드를 치고 있던 손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 뇌종양이래."


2023년 8월 25일

수술을 했다.

의사는 아무런 이상 증상이 없을 때 이렇게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며, 이럴 때 수술을 하는게 좋다고 했다.

해당 대학병원에서 최고의 능력을 갖춘 "Professor"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집도할 거라고 했다. 

수술 후, 안 좋은 결과가 생길 가능성은 3% 미만이랬다.

베니처럼 젊고 건강한 사람은 수술하고 3일만에도 퇴원한다고 했다. 

내 자궁근종 수술도 그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이 사람들에게 이 수술은 일상적인 루틴인가보다 했다. 위치가 뇌에 있어서 그럴 뿐 별것 아닌수술인가 보다고 하며 우리는 마음을 놓았다. 사람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면 설마 이렇게 쉽게 수술을 하라고 권장하겠냐며.


아침 첫 수술.

간호사가 호출하자 대기실에 앉아 있던 베니는(그렇다. 전날 입원도 하지 않았다), 수술 후 입을 옷가지를 담은 가방을 메었다. 그리고는 '안녕, 이따 봐" 하고 환하게 웃으며 간호사를 따라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일주일의 중환자실 입원.

베니는 사경을 헤맸다. 


왼쪽 얼굴 안면 신경 마비 

왼쪽 눈 복시 현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음

왼쪽 귀 청력 손상으로 안들림

성대 신경 손상으로 목소리 안나옴

무게중심 신경 손상으로 보행 장애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의사에게 이 증상들이 다시 회복될 지 묻자 의사는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말했다.

"아니요. 힘들거에요."


3% 라면서요.

이게 뭔가요?

이렇게 건강했던 사람을, 예쁜 베니 얼굴을 왜 이렇게 망쳐놓은건데요?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살아내려고 분투하고 있는 베니가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메는 와중에 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분명 수술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이니 고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원망스러운 마음이 나날이 커졌다. 그리고 결국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 베니 부모님께 울분을 토했다.

이건 수술이 잘못된 걸 거라고. 분명 3% 미만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어려운 수술이였다면 진작에 말을 해줬어야 했다고. 고소를 해야 한다고.


베니 어머님께서 차분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여셨다.

"그래서.. 쑤. 만일 고소를 하고 그 사람이 수술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면? 그러면 너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니?"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를 따스한 눈으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원한다면, 너와 베니가 고소를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런데, 너의 에너지를 다 써서 힘들게 싸운 후 실수를 했다는 것을 밝혀졌다고 치자. 그러면 그 후에는? 뭐가 달라질까? 보상금? 네가 그런거 필요해서 고소 하겠다는 건 아닐테고... 그러면 마음은 과연 좋아질까?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되면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것이 낫지 않을까?"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사람이 너무 힘들면 원망할 곳을 찾는다고 해... 잘 생각해보자... 선택은 우리가 한거였지. 수술을 하기로 우리가 선택했고, 이 병원 그리고 이 의사를 선택했어. 우리는 분명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사람도 분명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수술을 했을거야."


정말 나는 원망할 곳을 찾은 것일까...?


만일 수술이 잘 되었다면, 나는 얼마나 그 사람에게 감사했을까? 

수술이 막 끝나고 나서 세상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감사하고 존경스럽지 않았던가? 


3%가 아닌 97% 가능성의 수술 결과를 받은 사람들에게 이 의사는 참으로 감사한 존재이겠지. 

잠을 제대로 못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밤낮으로 수술을 하는 이 의사는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살려내겠겠지. 

그런 사람에게 단지 내 남편의 수술이 잘 안되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한다면,

그래서 이 사람의 인생까지 망친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 

이 사람으로 인해 앞으로도 몇 십, 몇 백명의 환자들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을텐데 나는 과연 이 사람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건가?


우리도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의사도 최선의 방법으로 수술을 했다고 믿기로 했다.

설령 그게 아닐지라도, 용서하기로 했다.


4개월의 재활병원 입원

염증으로 인한 한 차례의 재수술


세상에는 아무것도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침을 삼키고, 음식을 먹는 것도

웃고 화를 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도

두 눈을 동시에 깜빡일 수 있는 것도

말을 하고 듣고 걸을 수 있는 것도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가 얼마나 많은 신경과 연결되어 있는지 .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원망의 마음을 버리고 감사로 채우기로 했다. 


여전히 안면 신경이 마비되어 있지만, 

여전히 한쪽 귀는 안들리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지만,

말할때 웃을때 예전처럼 예쁜 표정을 지을 수 없지만,

그래도

베니가 목소리가 나와 다시 말을 하게 될 수 있음에.

보행 기구 없이 두 발로 잘 걸을 수 있음에.

예전처럼 먹고 싶은 음식도 많고 잘 먹을 수 있음에.

함께 아파해주고 힘들어 해주고 기도해 주는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 교회 사람들이 우리 옆에 많이 있음에.

그리고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않고 긍정적이고 밝은 베니의 모습에.


무엇보다 지금 내 옆에 베니가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첫 날 젊은 외국인 의사가 말했다. 

"얼마나 신경이 손상되었고 회복될 수 있는지는 'GOD' 만이 아는 거에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재활에 집중해 봅시다." 


잘못될 가능성이 3%라는 대학 병원 최고의 수술 집도 의사의 말이 완벽하게 빗나간 것 처럼

원상태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그의 말도 보기좋게 빗나갈 것이라 믿기로 했다. 


여전히 때때로 속상한 마음이 한없이 차오르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우울해 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말보다

주님의 약속을 

주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zmNc0L7Ac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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