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3)
오늘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지 9일이 되었다.
보름도 되지 않았는데 왜 벌써 한국에 가기로 정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다.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냐고? 그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다. '이렇게 여유롭고 날씨 좋은 곳에서 내가 살고 있다니'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오고 그냥 길거리만 걸어다녀도 괜히 기분이 좋을 정도이다. 근데 왜 돌아가냐고?
사실 해외에 온 이유는 어쩌면 도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나이는 점점 먹고 있고, 본가에 내려가서 산지 벌써 3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이렇게 방황만 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부모님에게 괜히 미안하고.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은 되겠지만 그래도 부모님도 나도 부담은 적어지겠지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것도 이유에 들어가기도 하고. 더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으니까.
근데 막상 와보니까 음 뭐랄까? 나는 해외에서 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내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거나 산책만 하다가 돌아와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늘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 가면 뭘 해야 하지?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또 알아볼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어했던 것들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결국 선택하지 않게된 이유까지도.
돈이 되지 않아서. 불안정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하고 싶은 게 일관됐었다. 거기서 연결 지을 수 있는 것들이 추가가 된 적은 있어도 삭제가 되지는 않았다. 근데 포기했던 이유는 내가 이걸로 돈 벌면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결국 이게 가장 큰 변명이었다.
근데 여기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굳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나 혼자 적당히 잘 먹고 잘 살고 싶을 뿐이고, 가끔 여행을 다니고 싶고, 부모님 용돈 챙겨드리고, 친구들과 만나서 맛있는 밥을 먹고 예쁜 카페를 가고 이게 전부이다. 이것들을 하는데 과연 큰 돈이 필요한가? 하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본가에서 지내다 보니까 일을 하더라도 결국은 월세를 내지않고, 생활비도 내지 않으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부담이 없을 수가 없었고, 무의식 중에 눈치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자취를 하다가 들어가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래서 혼자 살아보면 같이 못 산다고 하는 건지.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 결국 내가 일을 하고 있어도 아르바이트라서 정규직을 구하라고 할거고, 공부를 하고 있어도 정확히 무슨 공부인지 모르니까 불안해 하다가 끝은 전문직 공부 해보는게 어때? 라며 은근슬쩍 또 정규직을 바라고. 하루종일 누워있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하루에 한번은 꼭 방 문을 열고 들어오고.
이런저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까 내 공간이라고 해도 완전히 내 공간이 아니게 되는 이 상황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건가봐.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자취방을 알아보려고 한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또 작은 원룸으로 가더라도 그냥 나만의 안식처가 필요한 순간이 온 것 같다. 일하면서 애써 눈을 돌렸던 것들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해야지.
아,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포기했던 건 아닌데 왜 하다가도 재미없어져서 그만 뒀을까? 싶었는데 학원을 안 다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뭔가 정확한 목표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의 덕질과 연결을 시켜서 열공하려고 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덕질과는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인데 지금까지 그걸로 뭘 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번에는 해보려고. 벌써 설렌다. 그냥 나 혼자만 하던 공부를 최애와 같이 한다는 느낌? 괜히 웃음이 나오네. 나를 웃게 하는 건 역시 최애밖에 없나봐.
그래서 부담없이 한 달 동안 먹고, 자고, 여행하고, 여유 즐기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가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해야지.
그리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야지. 눈치 보지 말고. 그래도 퇴사하고부터 지금도 앞으로도 제대로 나에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나는 직장 체질이 아니라는거? 그래서 더 방황했나봐.
근데 신경 안 쓰려고. 내 인생인데 나만의 모양대로 살면 되는거지 뭐.
한국 사회 꽉 막힌 거 모르는 거 아니지만. 그 사회 안에서도 어떻게든 자신 만의 모양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거니까. 나도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