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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소울 Oct 19. 2021

내가 읽고 쓰는 이유

-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네가 뭘 알아? -

강연 듣는 걸 좋아한다. 강연회를 자주 다니다보니 ‘저자 싸인 받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처음엔 집에 마침 그 작가의 책이 있길래 들고 가봤다가 엉겁결에 줄도 서고 싸인을 받았다. ‘내가 이런 강연회를 다녔었구나!’ 하는 기념도 되고, 점점 컬렉션(?)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젠 강연회 가기 전 준비물처럼 책을 미리 사둔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오프라인 강연을 들을 기회가 많이 줄었다. 내가 사는 전주시는 2017년도부터 매년 이맘때쯤 독서대전을 개최한다. 작년에는 강연이 전부 온라인으로 진행돼서 내가 좋아하는 싸인을 못 받았지만, 올해는 한 강연당 30명씩 오프라인 참석자를 사전 신청받았다. 나는 사전 접수 오픈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원하는 강연 접수에 성공했다.     


나는 정여울, 곽재식 작가의 강연을 신청했다. 정여울 작가는 곧 <블루밍>이라는 신간을 출간한다고 했다. 평소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을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로 자기만의 시선에서 풀어낸 책이었다.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문학이 우리 안에 있는 내면 아이와 오래된 상처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본인이 서평 쓰기를 어떻게 훈련해왔는지도 말해주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려고 하면 누구라도 기억이 잘 안 난다며, 한 챕터를 마칠 때마다 혹은 한 페이지 읽고서도 메모를 한다. 그 메모를 모아 초고를 만들고, 제대로 된 글이 완성될 때까지 초고를 수없이 고친다.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이렇게 긴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핸드폰을 보고, 세상의 유혹에 끄달린다. 정여울 작가는 <블루밍>이라는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아홉 권 분량의 메모를 쓰고 버렸다. 읽고 쓰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세상의 다른 유혹에 끄달리는 대신 선택한 읽고 쓰는 삶은 정여울 작가를 치유하고 성장하게 했다.    

 

“네 까짓게 그런 어려운 책을 읽어?”     


내게도 독서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었다. 아빠는 내가 읽는 책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조롱했다. 아빠에게 책은 ‘쓸데없는 것’, ‘지적인 허영’이므로 책 읽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설령 그게 딸이더라도 서슴없이 상처 주는 말을 했다. 하필 나는 지적인 호기심이 큰 아이였다. 내 지적 욕구는 의심받고 폄하되었기에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했다.

 

오늘도 나는 책의 주변을 맴돈다. 때로 책이 어려워서 잘 안 읽어지면 불안하다. 좀처럼 잘 안 읽어지는, 내게는 재미없는 책이라고 편하게 말해버리는 일이 어렵다. 내가 책과 사이가 멀어지면 아빠의 말들이 맞는 예언이 될 것 같다. 상처받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평생 서성거리는 것은 대체 어떤 이유일까.     


정여울 작가가 해준 말처럼 지금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내 안에 있는 내면 아이의 양육자가 되었다. 나는 내게 두껍고 어려운 책들도 실컷 사준다. 밑줄도 마음껏 치게 해준다.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해도 된다고 말해준다. 독서모임도 다니고, 글쓰기모임에도 다닌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고, 블로그엔 서평도 올린다. 앞으로도 ‘쓸데없는 것’을 다양하게 많이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얼마 전에 봤던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백스피릿>에서 어떤 출연자가 백종원씨에게 자식들에게 가업으로 요식업을 물려주고 싶냐고 물었다. 백종원씨는 그런 얘기하기에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잘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줘요.
그래야 잘 안 되더라도 계속할 수 있거든요.


나는 은근한 약불 같은 사람이라서 확 타오르지도 않고 그 불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도 내가 가진 사랑을 의심하곤 했다. 나는 읽고 쓰는 삶을 사랑하는 게 맞을까. 그러면서도 계속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은 떠나지 못한다는 점이 내 사랑의 유일한 증명인 셈이다.     


에세이 수업이 끝나간다. 내가 누군가보다 열심히 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같은 생각이 드는 때에도 조금씩이나마 읽고 쓰는 삶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만약에 또다시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대체 그런   ?" "쓸모없어 보인다" 말해온다면, "이런 사람도 있을  있지! 네가  알아?"라고 당차게 대답하는 상상을 해본다. 약불도 이만큼 끓였으면 김이 펄펄 뜨거울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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