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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소울 May 27. 2021

글쓰기와 내가 마주쳤던 순간들

- 내가 에세이 쓰기 수업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이 여러 개 떠 있었다. 직장인 독서회에 다니던 시절부터 쭉 알고 지내던 분들과 하는 메신저 단체방이었다.


“까꿍요. 요거 제가 하던 것 올해도 한답니다. 서점으로 전화하세요. 선착순이니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황급히 한길문고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지금 자리에 없다고 해서, 아르바이트생과 통화를 했다. “저 에세이 쓰기 수업 모집한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요. (…) 선착순이라고 하니까 잊지 말고 꼭 전해주셔야 해요.” 혹시나 내 이름이 누락 될까 봐 신신당부했다. 2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원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소식을 알려주신 분이 요즘 글쓰기에 푹 빠져있다며 에세이 쓰기 수업에 대해 자주 말해주었다. 본인이 쓴 글도 가끔씩 보내 주곤 했다. 메신저 단체방에 있는 사람들끼리 교외로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날의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도 받았는데, 분위기 있는 사진이 곁들여진 글은 깜짝 놀랄 만큼 근사했다.    


나도 멋진 글을 써보고 싶어서 노트북을 켰다.    혼자 쓰고 말았다. 초등학교 때는 일기를  열심히 썼는데,  후로는 꾸준히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땐  글을 관심 있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도 내가 잘하는 것이 무언가 있었으면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숙제도 열심히 했는데 눈에 띄게 잘하는 것은 없었다. 대신 친구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친구들은 그런 나를 ‘책벌레’라고 불러주었다. 첫 별명이랄까, 캐릭터가 생겨서 기뻤다.    


그렇게 조용하게 지내다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일기장을 검사하다가 내가 쓴 어느 구절에 밑줄을 긋고 이런 칭찬을 써주었다.    


“네 예쁜 마음을 글로 잘 표현했구나.”    


아파서 학교를 결석했던 날에 쓴 일기였다. 그때 썼던 문장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학교에 못 나오는 동안에 학교에 있는 내 책상과 의자가 얼마나 쓸쓸했을까’하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글짓기대회에 나가보라고 말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둘이 남아서 독후감을 썼다. 그 대회의 주제가 그랬는지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를 읽고 써야 했다. 그 당시 나는 전래동화책은 이미 다 읽었고,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해서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결국 상은 못 받았다. 그것보다는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고, 선생님이 내가 쓰는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학년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내게 모범상을 주었다. "모범상은 모범생이 없으면 아무한테도 안주기도 하는 상이야."라고 살짝 귀띔해주셨던 게 기억난다. 누군가의 관심과 칭찬을 받아서 자라는 나이에, 나는 그 선생님 덕분에 잘 자랄 수 있었다.    


일기를 숙제로 내주지 않는 나이가 되고부터 점점 글쓰기와 멀어졌다. 비겁한 변명이겠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학교와 회사에 잘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3만 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건지도 모른다.    


독립하고 나서 찾은 내 소확행이 있다. 퇴근 후 혼자 저녁밥을 먹으면서 재밌는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간혹 맥주와 딱 어울리는 에세이를 만나면, 맥주도 같이 마시는데 안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런데 내가 고른 에세이는 대부분 서울 사는 사람이 쓴 것이어서 당연한 듯이 서울의 동네 이름이라든가 술집 이름 같은 것들이 나온다. 에세이는 ‘서울에 살거나 아니면 서울 살다 지방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 쓰는 장르인가’ 싶어서 나와는 멀다고 생각했다.    


에세이 쓰기 수업의 첫 숙제를 제출했던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고작 두 장짜리 글을 에세이 수업반 메신저 단체방에 보낸 것뿐인데도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예상외로 메신저 단체방에 올라온 피드백 댓글과 수업에 가서 받았던 선생님의 첨삭은 모두 진지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글을 여느 글과 똑같이 대해주고 있는데, 나야말로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보잘 것 없다고 여겼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오는 동안 글쓰기와 내가 마주쳤던 순간들이 꽤 있었다. 에세이 쓰기 수업을 신청해보라는 소식을 들었던 날, 마치 기다려왔던 것처럼 단숨에 신청한 데에는 어떤 계획이나 이유가 없었다. 글쓰기와의 두서없는 만남들과 그때마다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이 무의식 속에 쌓여있다가 그 메신저 대화방을 본 순간 나를 번뜩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도 에세이 쓰기 수업에 다녀왔다. 수업 하루 전에 미리 프린트물을 출력하고, 다른 수강생들이 쓴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잠자기 전에 야무지게 가방까지 싸놓는 열심을 보였다. 얌전한 게으름뱅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믿을 수 없이 대단한 행동이었다. 학교 다닐 때 소풍 가는 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분명 좋아하고 있다. 쑥스럽게 내미는 내 글을 아무렇지 않게 잘 대해주는 것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과 정해진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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