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사가 뭐 어때서요

원더티처 강유라

by 원더티처

교사들 사이에서 ‘참교사’라는 말이 조롱처럼 쓰일 때가 있다. 본래는 교사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뜻하는 말이, 이제는 현실 감각 없는 이상주의자라는 단어로 변질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돌며 학생의 안부를 묻거나, 누가 시키지도 않은 학급 환경 정비를 자처하거나, 학생 개개인의 사정을 꼼꼼히 파악하려 애쓰는 교사를 향해 “와, 참교사네” 하고 말하는 식이다. 겉으로는 농담처럼 웃지만, 그 말 속에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그렇게 해봐야 보상도 없다’는 씁쓸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참교사라는 말이 더 이상 이상적인 교사의 상이 아니라,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나 ‘돈 안 되는 일에 감정 낭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학생을 향한 진심이 때로는 ‘돈도 안 되고 점수도 안 되는 일’로 취급되기에 우리는 조용히 참교사를 조롱하며 서로의 무기력함을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다시 꺼내 들고 싶다.


참교사가 뭐 어때서요?


매일같이 눈앞의 학생 한 명 한 명을 살펴보며,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주는 걸 잊지 않는 선생님이 있다. 수업 준비에 공들인 흔적은 드러나지 않지만, 학생의 마음을 움직일 수업을 만들기 위해 밤늦게까지 고민하는 교사도 있다. 점심시간에도 상담을 하고, 누가 보든 말든 교실로 향하는 그 발걸음은 늘 학생을 향해 있다. 행정력도, 문서력도 아니지만, 분명한 건 그 손끝에서 교육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학교 교육은 점점 보여지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학교가 ‘보여지는 교사’를 우선하는 구조로 기울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공문을 매끄럽게 작성하고, 행사를 잘 기획하며, 관리자의 취향을 잘 반영해 외부와 능숙하게 소통하는 교사는 빠르게 인정받는다. 반면 학생 곁에서 교사의 본질을 지키려는 일, 교실 안에서의 묵직한 진심과 날마다 이어지는 작고 반복적인 수고, 말없이 쌓아 올린 신뢰와 관계는 드러나지 않고 성과로 환산되지 않기에 쉽게 무시되거나 평가에서 밀려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우리는 그럴수록 진짜 교육의 자리는 어디인가 되묻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교사들이 그런 일들을 해내고 있다. 교육은 결국 교실에서 일어난다. 오늘도 학생 옆에 앉아 귀 기울이고, 질문 하나에 진심으로 고민하는 교사들이 있다. SNS에 올라오지 않고, 수상 경력으로 남지도 않지만, 분명 누군가의 성장 곁을 지키고 있는 이들. 그 이름 없는 노력들이 모여 학교를 학교답게 만들고 있다.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학생 곁에 앉아주는 그 순간이 아이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분명, 그 자리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혹시 요즘 ‘ 나만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지칠 때가 있다면, 조용히 자신에게 되물어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참교사인가? 그렇다면 뭐 어때요. 참교사여서 다행이라고, 그런 교사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 희망적이라고, 그 자부심을 함께 지켜주는 동료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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