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은 공만 던져주면 되니까 편하죠?

원더티처 강유라

by 원더티처




챗GPT로 본 사주에서 2026년엔 창작욕이 불타오를 것이라더니 정말인가 봅니다. 전하고 싶은 말들이 왜 이리도 많은건지, 머릿 속에서 미친 듯이 유영하다 휘발됩니다. 생각들을 붙잡아보고 싶어 35년 인생 처음으로 혼자 제주도로 훌쩍 날아와버렸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취향이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은 재미없다고들 하던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음악과 사진을, 그리고 분위기와 칵테일을 좋아하더라구요.


밤 비행기로 도착해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혼술바로 향했습니다. 인간 좋아 인간에게 혼술바라니...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술바는 혼자 술먹는 곳이 아니라

혼자 왔다가 여럿이 되는 곳(bar)이라더군요.


가게 바깥까지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와 대화소리에 살짝 뒷걸음질 치던 저는 그래도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답니다.


가게 메뉴판을 보니

'옆 사람에게 말걸기'가 미션이더라고요.

나가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하필 또 옆자리에 앉은 99년생 친구들이 체대 출신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혹시 누나도 수업하세요?"


.....?


다음날 만난 01년생 친구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남학생들은 공만 던져주면 끝 아니에요?"

"체육은 그래도 공만 던져주면 되니까 편하지 않아요?"


아나공 세대인 저는 질문의 의도들을 적확히 간파합니다.

그리고선 왜인지 모르게 구구절절 해명합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2025년의 저는 방학식 직전까지 수업을 한 악독한 교사였습니다.


여러 대화 사이에 흘러나온 잠깐의 질문이었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만드는 질문이었어요.




여전히 체육교사의 이미지는 제자리구나...





저는 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제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제게 배운 아이들만큼은 체육이 어떤 것인지, 신체 활동의 즐거움은 무엇인지 알고 떠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이상은 제 역량 밖의 일들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배운 나이대의 제자들과 동갑내기의 친구들이 여전히 아나공 체육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들을 보니 꽤나 큰 회의감이 몰려오더라구요.


유서 깊게 자리 잡힌 하나의 직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빠른 시간 내에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보다 조금은 더 세상을 향해 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체육교육의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무엇을 한들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는 아나공 체육을 바꿀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도 아나공 체육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교육, 그리고 체육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보려 합니다.


체육은 공만 던져주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

전인 교육의 가치를 품은 수업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교사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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