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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Apr 30. 2024

사회성을 사교육 중입니다


고망이 교육비가 한 달에 백만 원 가까이 든다. 서울 기준, 요즘 또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어 유치원은 약 250만 원, 일반 유치원도 100만 원 안팎 하는 곳이 많으니 딱히 놀라운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근데 우리는 30만 원 좀 안 되는 어린이집 외에 사교육 비용이 70만 원 정도 된다. 한글이나 영어 등 학습 관련한 학원이니 학습지에 투자되는 건 아니고 사회성 교육에 드는 돈이다.


"고망이랑 소통이 잘 안 돼요."

어린이집 입소 후 첫 상담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고망이랑 눈 맞춤이 잘 안 되는 부분이야 몰랐던 것은 아닌데 어린이집에서는 아예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발달 센터 수업 듣기를 권고했다. 마음이 덜컥했다. 두 돌 이후 말이 트여 요구 사항이나 관심사에 대해서는 큰 어려움 없이 했기에 이런 정도의 피드백을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날 이후 곧장 센터 수업을 등록하고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진료 예약을 했다. 요즘 각 집마다 아이라곤 하나 둘 정도다 보니 자녀의 발달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고 정보도 널리 퍼져 유명 교수의 경우 적어도 2년, 길게는 8년씩 예약이 차 있었다. 우리 부부는 자연 무한 검색에 들어갔다. 소통, 상호작용 문제는 결국 '자폐스펙트럼'이란 단어로 이어졌다. 우리 고망이가 그럼 소위 자스인가? 작년은 온통 거대한 이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는 제법 잘 습득하고 똑똑하게 말하는 고망이. 동네 어르신들한테 시키지 않아도 인사하는 고망이. 엄마, 아빠, 할머니한테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고망이. 노래를 잘 외우고 함께 부르는 고망이. 그런데도 자스일 수가 있을까. 그것이 스펙트럼인 만큼 그래도 자스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인터뷰, 책, 관련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의견이고 이 애매함이 피를 말리는 포인트다.

고망이의 경우는 찐하게 눈 맞추지 않는 것, 감각이 예민하고 시각적인 것에 매료되는 것, 상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타인 특히 또래와 소통하지 못하는 것 등이 걸리는 대목이다. 일찌기 숫자, 문자, 색깔 등 학습적인 것을 잘 익혔는데 그러한 점도 의심할 만한 조건이라고 했다. 알면 알수록 내 판단은 '자스일 가능성이 높겠다'로 기울었다. 대학병원 진료를 기다리고 있자니(현재도 아직 대기 중) 답답해서 간 개인 병원에서는 '자스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언어 평가도 평균 수준으로 나왔다. 센터 수업 후 상호작용도 꽤 좋아져 남편, J 역시 그저 느린 아이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의심의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진료는 15분이나 봤나? 것도 운좋게 그날 아이가 컨디션이 좋아서 질문에 답을 좀 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본 내 판단이 제일 정확한 거 아냐? 그런 내 태도에  J는 "전문가도 아니라는데 자스이길 바라기라도 하는 거냐"고 화를 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낙관적으로 생각했다가(혹은 스스로 회피했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뒤늦게 닥친 문제를 감당 못해 후회하는 것이었다. 육아 교육 프로그램에서 왕왕 보던 그 장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심과 걱정이 시작되고서 1년 정도 후인 현재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굳이 그렇게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로 말이다. 그 판단은 누가 뭐라든 자스로 판단했을 때 만큼이나 확신에 찬다. 그리고 그 시점은 나를 보는 고망이의 눈빛이 정확하고 깊게 내 눈 속을 관통했다고 느꼈던 어느 날부터다. 문제의 딱지를 붙이고 내가 그 깊은 눈맞춤을 순수히 즐거워할 수 있을까. 어차피 앞으로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에 마음을 태워 현재의 이 사랑스러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 아닌가. 그리고 관련 커뮤니티에서 읽은, 깊은 고심에서 나온 수기들 역시 이러한 생각들과 통하는 바가 많았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치료가 중요하지만 어차피 그것을 받아내는 그릇의 크기는 타고난 것이니 치료에 너무 연연해서 현재의 예쁜 모습을 놓치지는 말자는 것.


물론 이것은 아직 단체 생활에서 큰 문제가 없고, 최근에는 우려스러운 모습이 좀 걷히고 성장한 모습을 더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체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좀더 케어받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나 전문적인 조언이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진단에 매달렸을 것 같다.

현재는 대학병원 진단을 유보한 채, 다만 진단을 받은 것과 동일하게 특수 치료(감각통합과 언어치료)를 이어가며 고망이의 면면을 살피고 다가올지 모를 문제를 대비하고 있다.


J는 아직도 그저 좀 느릴 뿐인데 괜한 돈을 쓴다고 투덜거린다. 처음에는 나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맘 고생을 했으면서, 그래서 고망이와의 몸놀이와 눈맞춤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것이 효과를 보이자(어쩌면 상당히) 쉽게 그런 답답한 소리를 한다. 나는 독박러로서의 권위로 그 의견을 무시하고 사회성을 사교육하고 있는, 사회성에 유난한 엄마 컨셉을 고수하고 있다.

몇달 전까지도 다른 또래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다르다'는 점이 느껴져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르다는 종종 뒤쳐진다, 떨어진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또래 친구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느냐로 지켜보지 않는다. 지난번과 어떤 다른 점을 보이는가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면 미세하게라도 달라진, 긍정적인 모습이 보인다. 친구에게 웃어준다. 놀이를 받아준다. 친구 엄마를 안아준다.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먼저 한다... 등.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관심이란 볕만 잘 쪼여준다면.


"어쩌면 부모의 가장 큰 숙제는 성심성의껏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어떤 식물로 자라날 것인지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식물이어야 한다는 고집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싹을 틔워 자라나는 식물이 그 자체로 고유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는 재판관이 아니라 발견자, 탐험가, 탐정이 되어야 한다"


가족심리치료 권위자인 버지니아 사티어 선생에게서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고유성을 발견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내 존귀한 노동에 모토가 될 만하다. 어차피 노쇠하여 외동은 확정이고 에너지를 그러 모아 나는 가장 신뢰받는 고망이 연구자가 될 생각이다.

 J, 우리 돈 열심히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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