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은 언제 사라지는가.
요즘은 오히려 안 자는 날이 없는 것 같다. 3시에도 자고 5시를 넘겨 잠들기도 한다. 그냥 두면 한 시간 반 이상은 잔다. 그럼 퇴근하고 돌아와도 말똥말똥한 눈으로 텐션 좋게 나를 맞아준다. 그리고 가방도 벗을 새 없이 손을 이끌어 놀이에 참여시킨다. 일을 한창 하고 돌아왔는데 또 다른 일터로 끌려온 격. 책 읽기나 종이 접기라면 그나마 나은데 물감을 꺼낸다거나 클레이 책상을 끌어내리면 약간 절망스러운 기분이 든다.
엊그제는 모처럼 맞은 연휴로 롯데월드에 다녀왔는데 가는 차 안에서 잠들기에 "나이스!" 했던 것이 무색하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또 잠이 들었더랬다. 집에 당도하니 리셋. 2라운드 실내 놀이 스타트. 머리가 어질했다.
바깥 외출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면 어딘가 기대 쉬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왜 아기들은 그 '포즈(pause)'라는 게 없는 건지 신기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을 씻고는 곧장 놀이방으로 들어가거나 거실에 있는 놀잇감들을 꺼낸다. 그리고 이내 (아빠는 절대 아닌) 나를 부른다.
"엄마 뭐해요?"
나? 침대에 잠시 누우려고. 맞다. 내가 뭘 하는 건지가 궁금한 게 아니지. 저 말은 나랑 안 놀아 주고 뭐 하냐는 타박이다.
고망이를 보고 있자면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문화와 정신적인 영역이 놀이에서 비롯되었다더니 그래서 보다 원초적인 우리 아이들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놀이를 좇나 보다. 지금 고망이의 치료 역시 친구들과 놀이를 원활하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혼자 노는 것을 넘어서서 함께 노는 것, 의견을 주장하고 상대에게 맞추고 조율해서 즐거움을 공유하는 과정이 사회성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놀이에 대해 늘 신경쓰게 된다.
최근 내가 없는 저녁 시간엔 할머니와 있다 보니 자연 TV 노출이 많아졌다. 상호작용이 중요한 고망이에게 장시간 미디어 노출이 당연 좋을 리가 없다. 할머니도 그 점을 모르지 않지만 나처럼 제한하기는 힘들고 맡겨놓은 입장에서 내가 푸시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그저 중간중간 꺼달라, 같이 보면서 이야기 나누어 달라고 하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상호작용 듬뿍 넣어 영혼 있게 놀아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고민하는데... 그 함께하는 시간이 퇴근해 돌아온 밤 시간이면 영혼이 출가해 버리는 게 문제다.
어제는 잘 나가다 결국 짜증을 터뜨렸다. 찬 바람에 터진 비염이 한몫한 듯하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도 나름 일찍 귀가했고 <생일케이크 만들기>란 책을 같이 읽고 클레이로 케이크를 만드는 독후 활동도 하면서 하하호호 웃기도 했다. 그런데 잠자리에 누워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잠이 안 올 때 하는 발광이 시작된 것이다. 침대 위를 뒹굴고 벽을 발로 두드려댄다. 그러다 내가 저지하면 다리를 브레이크 댄스 추듯 한 바퀴 돌리다 내 머리를 치기도 한다.
낮잠을 늦게까지 자서 '자정이 훌쩍 지나도' 잠이 안 오는구나. 머, 이성적으로 그런 생각은 한다. 하지만 머리가 닿자마자 몸이 노곤해지고 코는 막혀오는 내 상태는 커피포트처럼 끓어오른다. 그리고 급기야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나가! 엄마 말 안 들으면 같이 안 잘 거야!!"
그러다 늑대의 시간이 지나고 나도 저도 어느새 꿈나라로 간다. 새벽에 눈을 뜨니 무시무시한 소리로 으드득 이를 갈다 돌아누우며 "잘못했어요" 하는 고망이. 꿈속에서도 혼나고 있나 싶어 마음이 아려 꼭 안아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자정이든 말든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하냐고. 잘못은... 아직도 귀가 안 한 니 아빠에게나 있지. 상호작용 듬뿍 놀이? 짜증이나 내지 말자, 싶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