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매쓰니 Pat Metheny
음악 이야기 Beyond the sky I belong
2000년대 초반 서울에서 한참 먼 작은 지방 도시의 중학생이던 내가 세상을 꿈꾸는 방식은 대게 음악이었다. 또래들은 모르던 유희열의 심야 라디오 방송을 챙겨듣고 노래 제목을 하나하나 메모하며 늘려가던 나의 정원. 모은 용돈은 언제나 CD를 사는데 썼고 나는 그 시절에도 이미 구닥다리 취급받던 오래된 두꺼운 파나쏘닉 씨디플레이어를 항상 작은 손가방에 넣고 다녔다.
팻매쓰니는 유희열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티스트였다. 내가 처음 들었던 곡은 팻매쓰니 그룹의 데뷔 앨범인 오프램프 [Off Lamp]에 수록된 가장 유명한 곡 [Are you going with me]였다. 처음엔 어떻게 따라가야할지 조금 어려웠던 것도 같고. 그런데 이 곡은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좀처럼 대체할 수 있는 곡이 없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곡이기도 하다. 나는 또 [Letter from home]이란 앨범을 가장 많이 들었다. 인트로인 [Letter from home]이란 곡을 워낙 좋아했다. 언제나 아름답고 그리운 곡이다. 들을 때마다 모종의 향수가 느껴져서 원래 세상에 없었다고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베이시스트 찰리헤이든 Charlie Haden과 협업한 [Beyond the Missouri Sky]라는 앨범도 참 좋아했다. 찰리헤이든과 팻매쓰니는 드넓은 초원이 있고 하늘이 가까웠을 미서부 미주리에서 그 하늘 너머를 상상했던 모양이고 나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 속해 그러나 어쩌면 그들처럼, 삼거리 주유소 너머 은색 구름 너머 다른 세상을 상상했었다.
2016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그 팻매쓰니를 봤다. 처음으로. 아마 팻매쓰니가 헤드라이너라서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예매했었던 것도 같다. 마지막에 등장한 팻매쓰니는 아무 말 없이 몇곡을 연주하다 갔는데, 마지막 곡이 [Are you going with me]였다. 순식간에 등장했다 사라졌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해야했던 혹은 일어날 것만 같았던 어떤 일을 마침내 한 기분이었다. 여름 밤이었고 그와 함께 였고 무대의 왼쪽에 있었고 은발의 팻매쓰니가 노랗고 분홍색인 핀조명 아래 [Are you going with me]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여름밤 재즈 공연들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팻매쓰니가 내가 사는 곳 바로 근처에 오는 걸 알게 됐다. 솔드아웃 직전에 표를 구했고 혼자 공연에 갔고--끝나고 공연에 온 친구를 만났지만-- 이번엔 쉬는 시간 없이 장장 두시간에 달했던 팻매쓰니와 건반, 드럼/퍼커션, 세명의 트리오 연주를 그들이 아주 섬세하게 의도한 대로 보고 들었다. 마치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앨범을 듣는 경험을 의도한 것처럼 그가 중간에 잠깐 물을 마시는 순간 조차 드럼과 피아노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서너번째 곡에 다다르자 시작부터 쌓아왔던 마음이 차올라 눈물이 났다. 행복의 눈물이었던 것 같은데, 사운드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연주가 너무 완벽해서였는지, 오랜만에 공연을 봐서 너무 좋았는지, 음악이 좋았던 건지, 내 기억들이 뒤섞인 드라마인지 당최 모르겠다.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면서도 머릿 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는데, 재즈의 불확정성 혹은 불규칙성 혹은 예측 불가능성이 주는 평화, 메이저와 마이너 그리고 조성을 알 수 없는 불협의 음들이 한 음 바로 찰나 다음의 시간을 제멋대로 채워갈 때 느껴지는 그 자유로움에 감격했던 것도 같다. 돌아오는 길에, 또 친구에게 팻매쓰니를 어떻게 처음 듣게 되었는지를 얘기하며 새삼 나의 과거와 현재, 내가 속했던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와 지금의 내가 속한 미국 어느 곳이 팻매쓰니라는 이 이국적 아티스트로 연결됨을 깨달았다. 시공간 혹은 사람 사이의 연결은 때로 의외의 지점에서 지독히도 짙게 일어난다.
202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