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내 마음을 참 잘 알아차린다고 생각했다.
군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생활에 힘들고 지칠 때 집에 전화를 걸면,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어떤 심정으로 전화를 했는지 바로 맞히셨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괜찮다, 잘 지낸다"라고 둘러대도, 어머니는 모든 걸 알고 계신 듯했다. 별다른 위로나 격려의 말 없었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예전부터 내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읽어내셨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끼리만 쓰는 은어나 유행어가 많았다. 같은 반이라도 무리마다 언어가 달라서, 어떤 말은 특정 친구들끼리만 통했고, 다른 친구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무심코 어머니 앞에서도 쓰곤 했고, 당연히 못 알아들으실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치 처음부터 그 뜻을 알고 계셨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해하셨다.
너무 신기해서 물어봤다.
"엄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그러면 어머니는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 뜻을 맞추셨다. 신기해서 어떻게 아시냐고 다시 물었더니, 어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뱃속에 10달 있었는데, 그걸 모르겠냐?"
그때는 그냥 신기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갓난아기였던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배우고, 표정을 짓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이의 표정만 봐도 어떤 상태인지 읽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은지, 뭔가 불만이 있는지, 서운해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얼굴만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우셨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자, 아이는 점점 내 말을 귀찮아하고, 때로는 "아빠가 뭘 알아?"라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나도 부모님께 똑같이 대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이 났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자연스레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다시 부모가 되어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닫는 과정.
그런데 나는 아직 멀었다.
어머니는 내가 쓰던 은어도 척척 알아들으셨는데, 나는 요즘 아이들이 쓰는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대화하다 보면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는 게 더 많아졌다. 어머니가 나에게 보여주셨던 그 감각을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은 더 배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