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1N연차 애쓰는 꼰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 순으로 직장생활을 그려내면 좋겠지만, 꼭 시간순이 직장생활 팁이 되진 않으니 이쯤에서 남겨보는 필자의 사회생활 현 상태를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현재 필자는
언론사–국내기업–외국계기업(1)–외국계기업(2, 현재 진행형)에 재직 중인 1N연차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실무진이지만, 직급상 매니저이다.
물론 나 자신을 매니징 하는 게 주 업무이긴 하지만,
이젠 마냥 주니어 실무진이라 하기엔 연차와 직급이 되었고
그렇다고 관리직급이라 하기엔 여전히 너무 일선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이미 꼰대가 되었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이미 되어버린 꼰대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라,
꼰대가 되어버렸다면 어떤 태도로 어떻게 회사를 다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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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생각해 보는 꼰대의 정의
(사전적 정의)
원래 아버지나 선생님 등 권위 있는 ‘늙은 사람’을 의미하는 은어였지만,
(요즘의 이미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모든 연령… 이지 않을까 싶다.
나이에 상관이 없다.
‘젊 꼰(젊은 꼰대)’가 더 타협이 되지 않아 무섭다는 말도 있고.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꼰대가 무조건 나쁘다,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꼰대이지만, 꼰대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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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필자가 스스로를 꼰대라 생각하는 이유
1. 지금도 회사 임원진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회 초년생의 생각과 행동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때들이 꽤 자주 생겼다.
그리고 회사나 선배들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졌다.
2. 사회 초년생이나 30대 초반까지의 친구들을 보면 ‘보송보송 귀엽다’라는 생각이 먼저.
3. 한마디라도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꾹 참지만).
4. 일을 못하는 것은 견딜 수 있고 가르쳐줄 수 있지만, 열심히 하지 않거나 예의가 없는 것은 참기 어렵다.
외국계 회사 특성상 신입 공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에 아주 어린 친구들이나 사회 초년생을 가르칠 일은 드물다.
몇몇 대학생 인턴 친구들, 취업 전환형 인턴 친구들, 혹은 업계 모임에서 초년생 친구들을 만날 때 정도랄까.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후배들을 볼 때 그래도 가까운 세대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는 느낌에 가까워졌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1N연차가 되었다고 하면 눈이 반짝이며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쉽사리 묻지 못하는 얼굴을 마주하곤 한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었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다른 선배들은 어떤 길을 갔는지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선배들 개개인의 사적 영역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야기를 묻기가 조심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누군가 요청할 때면 늘 내가 해본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 길이나 방법이 꼭 유일하거나 정답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꼭 덧붙이고 이야기한다.
반드시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하고.
꼰대가 반드시 나쁘냐… 꼭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꼰대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라면 ‘자신의 방식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지나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명쾌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일이 더 많다.
물론, 라떼는 말이야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의 경험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경험’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경험‘을 모든 케이스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그 안의 시행착오든, 꿀팁이든 들어볼 만한 일들이 있다.
이미 ‘꼰대’ 임을 인정하기로 했다면, 결국 계속 새롭거나 다양한 세대와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꼰대’가 될 것이냐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먹더라도 인간이니 실수하기 마련이지만, 반드시 나의 경험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 다른 세대의 다른 생각에 대한 적극 지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들을 수 있는 수용성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꼰대가 되더라도 ’ 다름‘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역시 적용된다는 말과 같다.
꼰대만 노력해야 하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꼰대‘도‘ 노력해야 하는 시대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