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다. 돌아오니 임원 보고가 코앞이다. 내일이 보고라 밤 12시까지 팀원들과 함께 보고자료를 만들고 방금 퇴근했다.
카카오택시를 불렀는데 현 위치가 잘못 찍혔다. 전화로 위치를 설명했는데 전달이 제대로 안 된 것 같다. 택시기시가 한껏 짜증을 부렸다.
신월지하차도에 올라탔다. 터널로 된 유료도로인데 시속 150킬로로 달리는 중이다. 차 안의 안전장치들은 속도를 좀 낮추라며 삐용삐용 울려댄다. 터널은 차선 변경이 금지돼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차 사이를 오가며 추월을 해댄다. 집에 10분 빨리 가려다 이번 생에서 50년 빨리 사라질 것만 같다. “기사님, 너무 속도가 빠른데 조금만 천천히 가주세요.”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속도를 줄일 기미도 없다.
몸이 좀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마음이 편하다. 어제는 남편 생일이었는데 보고 자료 때문에 퇴근이 늦어져서 계속 불안했다. 다른 팀원들이 저녁밥을 먹으러 간 사이에 남아서 일을 하고, 돌아온 팀원에게 나머지를 맡긴 다음 먼저 자리를 떴다. 저녁 7시면 비교적 일찍 퇴근한 편이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이에게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미안할 일이 너무 많다. 결혼기념일에도 밤 12시에 집에 들어왔다. 지난달에는 시어머니가 형제상을 당하셨지만 찾아뵙지 못했다. 프로젝트에서 사고가 터져서 한창 일을 하는 중이었다. 밤 9시에 어머님과 통화하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울먹이는 어머님 목소리를 들으니 나까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언제나 오분대기조에 비상근무다. 칼퇴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고, 야근은 일상이다. 컨설팅업체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고객사는 단기간에 고퀄리티의 결과물을 기대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돈을 생각하면 그런 기대도 무리는 아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혼 전이었다면 힘들지만 지금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퇴근 후 남편과의 저녁식사가 하루 중 가장 큰 보상이기에 버겁게 느껴진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택시가 집 근처로 왔다. “일로 가야 되는 거야?”라고 택시기사가 묻는다. 나도 ”응 “이라고 답할걸. 그래도 무사히 날 집에 데려다 줄 사람이니 “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