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하고 집에 오니 10시. 남편은 더위를 먹고 집에 와 맥주를 마신 뒤 저녁 7시에 아기랑 같이 뻗어버려서 자고 있었다. 현관에 택배 상자가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집이 아수라장이었다. 남편이 곯아 떨어져서 집안일을 못한 덕에 그런 것이었다. 내가 집에 올 때면 항상 집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었던 거다. 일단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고 (밤 10시지만 덥다)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둔 뒤 작업을 시작했다.
먹고 남은 분유 젖병을 싱크대로 가져가 세척
남편이 육퇴 후 마신 캔맥주와 나무 그릇에 담긴 팝콘 남은 것 버리고 설거지
젖병세척/소독기에 물을 채우고, 오수는 버린 뒤 젖병을 넣어 소독기 돌리기
분유물 포트에 있는 끓인 물은 분유제조기 브레짜에 채우고, 정수기에서 물 1100ml를 담아 끓이기 (100도까지 끓였다가 40도로 맞춰줌)
분유제조기 깔때기와 받침대 세척 (분유가 끼어있음)
분유제조기에 분유 채우기
로봇 청소기 정수통 물 채우고 오수통 비우기
빨래 건조대에 있는 아기 빨래 개서 서랍장에 넣어두기
빨래통에 있는 아기 빨래 세탁기에 돌리기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싱크대 정리. 싱크대에 나와 있는 그릇들 중 아직 건조가 덜 된 것은 키친타올로 닦아서 그릇장 안에 넣기
싱크대, 아일랜드 식탁 물티슈로 닦기
싱크대 물때 청소
안 쓰는 커피 캡슐 머신은 닦은 뒤 창고에 넣어두기
택배 뜯어 보니 휴지통 리필 봉투가 있어 절반은 주방에, 절반은 기저귀갈이대가 있는 아기방에 두기
거실에 어질어진 장난감 정리
아기방에 널부러진 책 책꽂이에 다시 꽂아두기
기저귀 쓰레기통, 주방 쓰레기통 비닐 묶어서 20L 쓰레기 봉투에 담기
꽉 찬 쓰레기 봉투 묶어서 현관에 두기 (내일 출근길에 버려야지)
빨래가 다 되어 빨래 건조대에 아기 빨래 널기
파스타 용기에 담아두었던 소면이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고 통은 세척해서 말리기
에어프라이 콘센트 off로 바꾸기
고양이 발톱 깎고 털 빗어주기
바닥에 떨어진 발톱은 돌돌이로 수거하고 물티슈로 바닥 닦기
고양이 물통 갈아주기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
고양이 자동급식기에 밥 채우기
아기 빨래 끝나서 빨래 건조대에 널기
아기를 재우고 나서도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다. 그러나 집안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디테일을 알 수 없다. 나는 8개월간 육아휴직을 하며 아기를 보았기에 육퇴 후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한적이 없었다. 오늘은 조용한 집에서 노래를 들으며 집안일을 하는데 내게는 힐링 타임이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머리를 싸매고 고통 받다 집에 와 머리를 비우고 1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는데 활력이 솟았다. 매일 하는 일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