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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Feb 06. 2016

인도여행 DAY 01

[+1 대한민국 인천] 사람은 의외로 큰일 앞에서 초연해진다

[+1 대한민국 인천]
2015.11.22






기나긴 1년이었다. 15시 52, 4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고옆에 앉아있던 수염이 듬성듬성 난 재수생 형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긴 한숨을 쓸어내렸다드디어 수능이 끝이 났다감독관은 우리들보다 더 신난 말투와 어조로 이제 실컷 놀 수 있다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도래했다며 누구보다 더 신난 말투로 목소리를 높였다. 

수능이 끝나고서부터 여행이 시작하기 전까지 인 열흘 동안 꽤나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우선 수능을 앞두고 있던 탓에 단 이틀 안에 히치하이킹 여행 강연 준비를 해야 했고, 인도 비자 발급과 여러 가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두 번이나 서울에 나가야 했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던가, 가장 친한 친구 5명이서 모인다던가 등등... 11월 12일부터 22일까지의 계획표는 빡빡함의 연속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중요한 가방 싸는 일은 여행 하루 전날 밤이 되어서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하면서 혼란의 연속이었고. 인도 여행의 필수품이자 바이블이라 불리는 무려 프렌즈 가이드북을 포기하고 (나중에 인도 여행 중인 사람들에게 가이드북을 두고 왔다고 말하자 그럼 어떻게 여행하냐며 놀라 하더라) 침낭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해보니 얼추 5kg가 조금 넘는 무게가 나왔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여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부족한 게 있다면 한국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현지에서 구하면 되니까.









가방도 여행가방도 아닌 책가방 비슷한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여행을 다녔는지 참.
이런 가방의 용량을 잴 때 리터 단위를 쓰지는 않는 것 같아서 잘은 모르지만 15L에서 20L 정도 되지 않을까.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김포공항이었다. 태국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김포공항이라니! 우연의 일치로 친구가 제주도로 떠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었다. 14시 비행기라고 하길래 그럼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해서 같이 먹고 나서 그 친구는 비행기를 타러 가고, 같은 단체카톡방에 있는 또 다른 친구가 왔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이제 두 달 뒤에나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린 여행이었다. 저 수능 끝나고 인도에 갈 겁니다! 그래서 <열아홉 살의 인도>라는 페이지를 만들었고, 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을 포함한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페이지를 팔로우했다. 인도 간다고 그렇게나 열심히 알리고 홍보를 했는데, 정작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20시에 내가 탈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사실도 망각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마치 육지에 남겨진 사람이 된 듯 제주도로 간 수빈이가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그리고 인도로 간다는 것 자체가 내 그릇의 크기에 비해 너무 큰 것을 담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들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내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건 아마 수험생의 티를 아직 벗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천성이 여행자였어도 집과 학교, 도서관의 반복이 일상에 적응된 사람에게 열흘 만에 갑자기 자유분방함이 몸에 밴 여행자의 모습을 갖추고 오라는 말은 세상을 바꾸라는 말에 준할 테니까. 나 자신이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기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한 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진짜 인천공항이다. 2015년 한국에서의 마지막 장소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뭔가 이상하다.









태국의 경우에는 편도 항공권만 가지고 있는 상태로 입국하는 것이 꽤나 어렵기 때문에 (얘기 듣기로는 편도로만 들어올 시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웃 티켓에 관한 검사를 좀 더 예민하게 한다. 나의 경우에야 4일 뒤 인도로 가는 아웃 티켓이 있었기 때문에 예약 확인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 저 땐 왜 이렇게 긴장을 했었는지. 아 인도에 갔다 와서 그런가.









암튼 그렇게 티켓팅 완료! 하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내가 진짜로 여행을 가긴 가나? 오히려 배웅하러 와준 여행 분야에서는 이미 스타가 된 나혜가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방콕에 놀만한 곳이 정말 많다며 자기가 더 신나서 이곳저곳을 얘기해주고 있는데 왜 이렇게 설레지가 않는 건지. 인간은 의외로 큰일이나 위기 앞에서 초연해진다. 현재 나는 아직 숫기 없는 수험생이 분명했다. 오늘 공부를 다 하지 못하고 책상을 탈출했다는 것에서 나온 죄의식인 걸까? 그리고 나는 언제쯤이면 여행자로 거듭날 수 있는 걸까.





인도 두 달 간다는 애 짐이 저게 끝이라니....





방콕은 지금 더울 테니 나혜한테 두 달 뒤에 찾으러 가겠다며 지금 입고 있는 후리스를 던져주고 (그래서 4일 뒤에 만나기로 했다. 아싸 내 후리스!) 보안검색대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그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듯 무덤덤했지만 친구들 데려다 놓고 마지막까지 뚱하기에는 조금 그러니까 최대한 밝은 척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사실 기쁘지만 기쁨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기에 기쁨을 표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비행기 좌석에 앉아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비행기는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방콕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상하게도 내 무의식 어딘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유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삶을 원하고 있었다.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그 생각을 할 때만큼은 정말 나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여태까지의 초연함과 무덤덤함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보지 못한 낯선 야경이 보이는 걸 보니 새로운 곳에 도착함이 분명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도시...
한국에서는 전혀 보지 못할 풍경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 내가 와 있다니.





과연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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