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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Oct 11. 2019

<스물셋의 인도> #7

델리는 지옥이다




델리에 3일 정도 머무는 게 적당한 일인가. 아니다. 본래 하루 더 머무는 일이 적당한 일인가에 대해 고민한다면 그것은 적당한 일이 아닌 게 된다. 내일 중으로 떠나야 함이 맞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 적당한 날씨의 마날리로 감이 옳다. 정말이지 델리는 여행자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니까.


나도 안다. 델리에 적당히 갈 만한 관광 명소가 있다는 것도 알고, 3년 전 이틀밖에 머물지 않았던 때에도 여기는 다음번에 오면 가야겠다 하며 미래를 기약했다는 걸. 그래야 다음 여행지로 가는 기차 안이 조금이라도 푸근하게 보일 테니 말이다. 여행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여지를 남긴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결말을 눈앞에 둔 드라마처럼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피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열린 결말, 해피 엔딩으로 가도 좋고, 새드 엔딩으로 가도 좋은 그런 결말.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지 않은 여행의 결말은 이미 드라마 작가가 대본대로 정해준 것이 되어버리겠지.

   

하지만 가끔씩, 굳이 결말을 보지 않아도 그것이 눈앞에 선한 드라마가 있다. 이는 시청자마다 각기 다른 결말을 내세우는 게 아닌 모든 이로 하여금 같은 줄거리를 도출시키게 만드는 그런 결말. 결국 그 주인공이 어떻게 하다가 어영부영 끝나겠지. 여기 8월의 델리가 그랬다.  구태여 관광 명소를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여행지. 에어컨 바람 밑에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시면 그것만으로 되었다 싶은 여행지. 40도를 오가는 무더움 속에서 그나마 도회지에서 누릴 수 있을 만한 행복이라곤 오직 스타벅스밖에 없다는 건 사실상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인도 스타벅스라고 해서 여타 국가의 것과 차이점이 없다는 건 아니다만, 서울이나 여타 다른 도시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스타벅스가 델리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다음 여행지로 떠남이 옳다는 거다.







여행자들은 보통 빠하르간즈라고 하는, 뉴델리역 바로 맞은 편으로 이어진 거리에 운집한다. 여행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탓도, 애초에 그곳에 여행자들이 있을 만한 숙소나, 식당, ATM 같은 인프라가 밀집되어 있는 탓도 있겠다. 사람들은 델리가 그렇게 싫다고 하면서도, 빠하르간즈가 그렇게 싫다고 하면서도 그곳으로 모이는 데엔 선택의 여지가 딱히 없어서가 아닐까. 물론 델리에도 구르가온이나 노이다 같은 신시가지가 여럿 있지만 당장 서울에 대입해봐도 이들이 청담동이나 압구정 같은 신도심이 아닌 종로 등지나 명동 같은 구도심에 여장을 푸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빠하르간즈 같이 값싼 숙소가 많다거나, 아니면 공항에서 오는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갈 만한 곳이 많다거나. 하지만 구태여 서울과 델리를 같은 비교 선상에 놓는 건 무의미한 일이겠다, 한국은 지나치게 떠들썩하지 않으며 그저 길거리를 걷는다고 하여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혼잡하나 고요한 나라, 자신과 다름은 틀림이나 이상함으로 인지하여 본인만의 특성이나 개성을 표출하기보단 최대한 일반 대중과 비슷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관용이 덜해 보일 수는 있으나 그 또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일반 대중과 비슷하지 않은 틀린 사람이 될 테니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는 그와 반대되지 않은가, 자신과의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지 않는 관용으로 보면서도 신기함이라는 관점으로 이를 쉽게 표출하면서 또 타인의 영역을 쉽게 무너뜨리는 곳이 바로 인도다. 다르게 생긴 외국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시답잖은 대화거리로 말을 걸거나, 아니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그런 인도에서 상권이 활성화되고, 이미 오래전부터 여행자들이 숱하게 오간 곳이라면 이들은 프로가 된다. 처음 보는 여행자를 어떻게 대할지 알지 못해 어쩔 줄 모르지도 않으며, 자신들이 이들을 성가시게 대해도 상관없다는 착각 속에 빠지곤 한다. 여행자 거리에서 여행자를 상대로 최대한 많은 수입을 얻어내는 게 자신들의 임무니까. 돈이 눈앞에 있다면 뭔들 못하는 이들의 근성이 빠하르간즈에서 절정을 이루어낸다.


그렇다. 빠하르간즈는 지옥이다.


본래 타인의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선 숱한 실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나 여행자들을 상대로 수입을 얻는 이들의 경우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여행의 역사가 길어지고 해당 국가의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인지하는 등 여러 정보로 무장한 여행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이 한 번에 큰 수입을 얻은 일은 더욱이 까다로워졌다. 바가지인지 아닌지, 일반적인 로컬 가격이 아닌지는 이미 뭇 여행자들의 내공으로 쉽게 판가름이 나는 일이 되었으며 구태여 탈 일이 없을 때 다가오는 릭샤 왈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다. 안 탄다고 거절해도 포기를 모르는 이들의 태세에 릭샤 왈라 본인들에게도 큰 감정 소모임은 물론 여행자에게는 얼마나 더 큰 감정 소모이자 낭비이겠는가. 그렇게 다가오는 이들이 하루에도 한 둘이 아닐 테니 말이다.     







혹자는 델리의 그런 인상을 보고 정말이지 인도가 철학의 나라가 맞냐며 되묻는다. 아무래도 인도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온 경우일 수도 있겠다만, 공항에서 처음 나와 처음 빠하르간즈에서 본 인상이 그가 바라본 모든 것일 테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인도인들과의 시답잖은 실랑이,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같은 패턴. 여행자들의 숱한 거절과 그에 따른 민망함을 무마하기 위해 여행자들이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며 궁시렁대는 이도 있는가 하면 자기네들끼리 킬킬거리며 이를 타파하는 유형이 부지기수다. 물가가 사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라는 패배주의적 관점으로 여행자들을 바라본다는 것. 개인적으로 나는 실제 인도가 크게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너넨 돈 많은 나라에서 왔고 이 정도 가격이면 너희 나라에선 큰 값어치도 아닐 테니 웃돈을 내는 게 당연하다는 이들의 태세에 여행자들은 자연스레 진이 빠지기 마련이다.


천당을 목전에 두고 불지옥에서 뒹굴 필요는 없다. 본래 2박을 계획했던 델리도 하루만 머물고 다음 목적지인 마날리에 속히 가기로 했다. 예약해 둔 버스 티켓을 변경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다. 어차피 수수료도 거의 들지 않으니 부담도 덜했다. 델리보다는 사람도 적고 혼잡하지도 않으며 날씨마저 좋은 마날리가 훨씬 낫겠지. 여행자인 나도, 여행자를 상대하는 이들도 어느 정도 여유가 넘칠 것이다. 지성인이 완벽하게 배제된 이들에 발맞추어 다 같이 지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던 델리보단 나을 거다. 거긴 달리는 릭샤가 어깨를 밀치지도 않겠지. 그럴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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