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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Aug 09. 2018

'헬조선'은 이렇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진: gags9999(flickr.com)

우리 사회가 '헬조선'이라고 자조적으로 불리는 이유를 찾고, 대안을 제안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에는 개인들이 자신들이 지향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구조적인 차원에서 박탈당했다는 좌절감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부를 물려받지 못한 ‘흙수저’는, 생계를 위해 시간을 보내느라 선택의 자유를 얻지 못하며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전통적 정책 해법은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과 노동 연계 사회복지 제도의 강화입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취약계층 복지 확대라는 정부 정책 방향도 이와 부합합니다. 근로장려금(EITC) 확대나 내일채움공제 및 취업성공패키지 같은 정책도 방향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선택의 자유’ 관점에서 볼 때 ‘헬조선’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저소득 노동자와 복지 대상자들이 학습하고 성장하며 선택의 자유를 높이도록 돕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용 형태에 상관없이 삶의 안정성을 보편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고용주가 아니라 사회가 지급하는 보상을 늘리면 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 임금’이라고 부릅니다.

고용 형태에 따른 보상의 격차는 이미 너무 큽니다. 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선택의 자유를 높이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취업을 선택할 수 있고, 학습을 선택할 수 있으며, 비영리 활동이나 커뮤니티 활동이나 돌봄 활동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선택을 개인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적 보상체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더라도, 적성이 맞지 않고 미래가 없는 일자리라면 머무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청년일수록 더 그럴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비영리 활동, 사회혁신 활동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너무나 가치있는 일이라서 손해를 보면서라도 시작하고 싶은 사업이나 창작활동이나 봉사활동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무급이거나 처우가 낮더라도 본인에게는 가치있는 일이라 뛰어들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사회적 지원입니다. 이들은 이런 사회적 기반 위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사람들입니다.


자영업자들의 예를 볼까요? 영세자영업자들의 곤궁한 처지가 최근 주목을 받습니다. 무엇이 근본적 문제일까요?

역시 자유입니다. 상당수 영세자영업자는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자영업을 선택했는데, 갈 곳이 없으니 떠날 자유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최저임금 인상 같은 비용 상승은 이들을 코너로 몰아부칩니다.


교육을 봐도 그렇습니다. 최근 국가교육회의에서는 떠들썩하게 공론화위원회를 가동하며 입시제도를 논의에 부쳤습니다.

그러나 입시가 바뀌면 학생들의 미래가 바뀔까요? 우리 사회 미래가 바뀔까요? 의문스럽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입시 공정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누구도 더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대학입시가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고, 입시에 필요한 과목 이외에 다른 학습을 할 수 있어야 자유로워지겠지요. 성인들이라면, 스스로 학습이 필요한 때 일을 쉬며 학습할 수 있어야 자유로워지겠지요.


한국사회는 과거 두 가지 버전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버전 1.0은 냉전 시기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의 ‘자유’였습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해체되면서 유통기한이 지났습니다.


버전 2.0은 시장주의를 강조한다는 뜻의 ‘자유’입니다.

2.0은 최근의 공정성 담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를 뒤덮은 신자유주의는 모두에게 끊임없이 이동하며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고 몰아부쳤지요.

그런데 삶의 불안이 커지자, 사람들은 거꾸로 얼마 남지 않은 안전지대를 향해 전력질주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인재가 몰리고 공기업이 대기업보다 나은 직장으로 여겨지며 교사가 최고의 직업으로 올라선 게 그 무렵부터입니다.

너무 작은 안전지대를 두고 모두가 경쟁하니 누가 들어갈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평가의 공정성, 진입의 공정성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회가 너무 많은 위험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니, 다들 안전지대를 향한 질주만을 하게 됐고, 그 결과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에도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나라에 살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유’는 이 모두를 넘어설 버전 3.0입니다. 사회가 개인에게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그 안정성 위에서 사람들이 실질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자유로워진 개인들이 더 행복하고, 행복한 개인들 중에서 혁신가가 나오며, 결과적으로 사회가 새로운 동력을 찾는 선순환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패러다임을 바꿔야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할 자유가 커지고, 진정으로 행복한 이들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개인은 비로소 창의성과 모험성을 발현하게 됩니다. 

행복한 개인이 혁신을 가져오며,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연구과제의 문제의식이 여기까지입니다. 

변화를 위한 정책제안까지 담은 연구가 마무리되면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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