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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지 Oct 15. 2020

휠체어 타는 며느리

지난 금요일 저녁 상견례를 했다. 상견례는 부산의 한정식집에서 진행되었다.

남자친구와 예비 시부모님. 요즘 한정식집에서는 상견례 자리라고 하면 꽃바구니와 원앙도 세팅해준다.

우리 커플은 결혼 준비하면서 흔히 겪는 의견 충돌이 거의 없었다. 5년 넘게 연애하면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고, 덕분에 결혼 전 우울증(Marriage blue)을 겪으며 날을 세우는 일이 없었다. 또 우리 둘 다 부모님께 독립한 지 오래되어,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경제적 독립하는 과정이 필요 없었던 점도 도움이 되었다. 결혼 준비에 부모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부모님들도 특별히 원하는 바가 없으셔서 웬만한 예단과 예물은 대부분 생략했다. 그 외에 예민한 문제는 상견례 전에 각자 부모님과 합의해놓은 상태였다. 언뜻 보기에는 결혼 준비가 이렇게 순탄할 수가 없었다. 상견례도 양가가 하하호호 덕담만 나누면 될 것 같다.

나는 국가에서 인정받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다.


보건복지부 2020년 장애등록심사 규정집 - 하지기능장애

내 장애가 문제였다. 남자친구는 병역 의무를 끝낸 신체 건장한 청년이다. 이번 상견례는 장애인 딸을 시집보내느라 죄인이 된 우리 부모님과 휠체어 탄 장애인 며느리를 맞이해야 하는 남자친구 부모님의 만남이었다.


아들이 진지하게 교제하는 여자친구가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고 들었을 때, 남자친구 부모님 심정이 어땠을까. 남자친구는 그 전달 과정을 내게 온전히 전하지 않았다. 그 또한 부모님께 나의 장애를 알리기까지 얼마나 갈등했을까. 남자친구 부모님의 솔직한 심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분께서는 ‘둘이 좋다는데' 라며 우리 만남을 인정해주셨다. 우리 부모님도 예비 사돈의 심경을 모를 리 없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는 연신  결심 해주셔서 감사하다 했다. ' 결심'이란 휠체어  며느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뜻할 것이다. 과거에 엄마는 남자친구 가족이 나와의 교제를 반대하거든 시집가지 말고 혼자 살라고 했다. 네가 뭐가 부족하냐며, 그런 대우받고 살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남자친구 부모님은 ‘둘이 좋다는데  살면 되죠.’ 여러  말씀하셨지만, 내게 항상  소리 뻥뻥 치던 엄마도 예비 시어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엄마는 예비 시어른께 주변에서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시부모님이 좋은 분이라고 해도, 주변에서 손가락질하고 걱정하는 이야기에 휩쓸릴 수 있기에 하는 부탁이었다.


나 또한 결혼하기 전에 가장 우려하던 부분이었다. 잘 지내다가도 나를 보며 “쯧쯧” 혀를 차는 사람, 초면에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하는 사람, ‘휠체어 언제까지 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속 타야 한다는 대답에 탄식을 금치 못하는 사람, 천국 가면 휠체어 안 타고 걸을 수 있다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무척 혼란스럽다. 사회가 나를 ‘불쌍하다' 여기는데 혼자 당당한 척, 잘 사는 척 합리화하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이런 데 무뎌진 나조차 가끔 무너지는데, 시부모님은 어떨까 싶었다.


짐작은 했지만, 상견례에서 남자친구 아버님이 한 번도 말씀해주시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얼마 전 남자친구 할머니께 손자며느리 될 친구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드렸다고 했다. "아이고, 어쩌겠노. 어쩔 수 없지." 하시다가도 "그래도 다리가 그래가 어떡하노." 아버님이 담담히 말씀해주신 남자친구 할머니의 반응은 그 시절을 90년간 살아낸 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너그러운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면서, 어릴 때부터 장애를 앓았던 40대 이상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다. 그분들은 “어릴 땐 집에서만 갇혀 지냈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라는 이야길 한다. 90년대까지도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면 부끄러워하거나, 장애인이 집 밖에 나가면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삶의 대부분을 살아오신 할머님이 그 정도 말씀으로 끝내신 것만으로 참 감사한 일이다.


상견례가 끝나고 예비 시부모님께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두 사람이 잘 살면 된다고. 우리 부모님, 그리고 예비 시부모님 마음이 어떠셨을까.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딸이자 며느리인 내가,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걱정되실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 두 사람, 상견례까지 무사히 마쳤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려고 한다. 내 손 잡아주신 그 손길 잊지 않으며,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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