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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전용 그림책 정기구독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빠 동생입니다.

by 원지윤
<오빠 전용 그림책 정기구독>

지난주, 육지에 사는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나 있잖아, 공황장애 판정 받았어.”


말은 담담했지만, 말끝이 조금 느려졌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니,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빠가 불안을 달고 살아왔다는 걸. 우울이란 단어와 아주 오래된 친구라는 걸.


오빠와 나는 일곱 살 차이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오빠는 열한 살에 검은 옷에 상주완장을 차고 절을 하고 있던 아이였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가장' 이라는 이름을 짊어진 채, 어른들 사이에서 어른인 척, 눈물을 참던 아이였다.


그날 이후, 오빠는 자주 아팠다. 몸이 아프다기보단, 마음이. 간혹 멍하니 창밖을 오래 보거나,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거나. 어릴 적엔 그런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섭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고, 서로를 향해 상처 주는 말을 던지기도 했고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조금씩 안다. 오빠는 늘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게, 아주 오래도록.


그래서 이번에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당장 달려가 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 지낼 수도 없고.


그러다 문득, 그림책이 떠올랐다. 짧고 단순하지만, 곧게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색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스스로도 모르게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되는 이야기들로 오빠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매달 한 권, 오빠만을 위한 그림책을 보내자고. 오빠가 읽지 않아도 괜찮고, 그냥 오빠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기만 해도 괜찮은 선물로.


그리고 나는 이 프로젝트에 이름을 붙였다. <오빠 전용 그림책 정기구독>


살짝 웃기지만, 나름 진심이 담긴 제목이다. 가끔은 가벼운 마음이 더 깊이 닿기도 하니까. 이건 나의 작은 연대다. 말로 다 건넬 수 없는 마음을 한 권의 책으로 조용히 보내는 방법.


그리고 어린 시절 오빠에게서 받은 마음들을 이제야 조금씩, 되돌려주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한다. 도움은 크지 않아도 된다. 곁에 있기만 해도, 충분하니까.


오빠가 내게 그랬듯, 이번에는 내가 그래야할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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