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봄이랑 코코랑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가족사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조금 들떴다. 제주에 온 뒤로는 한 번도 제대로 찍지 못했던 사진이니까. 아이는 컸고, 우리는 바빴고, 계절은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 코코가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사진이 생각났다. 미루고 미루던 일을 지금 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하는 존재가 있다. 코코가 그랬다.
제주스러운 배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나, 하늘의 빈 칸이 큰 곳에서 찍고 싶었다. 그런데 겨울의 제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주답다. 동백이 활짝 피는 계절. 나무에 달린 꽃도 예쁘지만, 더 제주답게 느껴지는 건 땅에 떨어진 동백들이다. 빨간 꽃이 통째로 툭 떨어져 길에 깔려 있으면, 누가 일부러 연출해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우리는 그 연출 같은 길 위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가족사진은 처음이 아니다. 하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2주쯤 됐을 때, 육지에서 한 번 찍었다. 그때 나는 그 사진이 완전체라고 믿었다. 이제 우리 집이 이렇게 되었구나, 하고. 그 사진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놓인다. 틀린 사진이 아니라, 그때의 진짜였으니까. 다만 요즘은 안다. 완전체라는 건 완성이 아니라 갱신에 가깝다는 걸. 가족은 끝맺음이 아니라 추가로 만들어진다.
코코는 우리 집에 온 지 이제 한 달.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얼굴을 벌써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그래서 나는 코코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우리 품에 딱 맞게 들어와 있을 때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기념이라기보다 기록에 가까웠다. 오늘의 크기, 오늘의 온도, 오늘의 우리를.
그런데 코코는 아직 사진의 의미를 모른다.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코코에게 중요한 건 카메라가 아니라 바닥이다. 새로운 장소에 오면 눈보다 코가 먼저 가고, 사람보다 공기가 먼저 말 걸고, 찍는 시간보다 맡는 시간이 먼저다. 그래서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 코코는 자꾸 등을 돌렸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 결과, 프레임 속에 자주 남는 건 코코의 뒷모습이었다.
작가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늘 코코는 엉덩이 샷이 많을 것 같은데요? ㅎㅎ”
우리도 웃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완벽한 포즈가 아니라, 지금의 코코였으니까. 아직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인 코코. 가족사진보다 새로운 냄새가 더 좋을 나이, 코코. 그 엉덩이가 자꾸 화면을 차지하는 건, 코코가 우리 집에 들어온 방식 그대로였다. 조심스럽게가 아니라, 생활의 중심으로.
하봄이는 반대였다. 하봄이는 이미 사진을 찍는 얼굴을 안다. 꽃 한 송이를 머리에 얹고도 태연하게 카메라를 본다. '그래, 또 찍는구나' 하는 표정. 하봄이를 보면, 이 집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가 보인다. 내가 우울하던 시절, 하봄이와 하루에 두 번씩 걸었던 오름의 길들이 겹쳐진다. 하봄이는 나의 시간표를 같이 살아준 반려견이다. 그래서 하봄이는 카메라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건 늘 사람 쪽이다.
한 프레임 안에 두 마리가 들어오니, 우리 집의 시간차가 보였다. 하봄이는 이미 우리였던 얼굴이고, 코코는 이제 우리로 자라는 얼굴이다. 한쪽은 익숙하고, 한쪽은 아직 낯설다. 낯선 쪽이 더 많이 움직이고, 익숙한 쪽이 그 움직임을 받아준다. 그게 가족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가족사진은 생각보다 엉덩이가 많이 찍혔다. 하지만 나는 그게 괜찮았다. 완벽하게 정면을 보는 사진보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살아 있는 사진이 좋았다. 우리 집은 아직 업데이트 중이고, 코코는 그 업데이트의 속도를 담당하는 존재다. 가족사진 한 장으로 완전체가 찍히는 게 아니라, 완전체를 향해 가는 우리가 찍히는 거라면.
동백이 깔린 길 위에서 우리는 잠깐 멈췄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장면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