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4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중학교 환경동아리 수업을 마치고 대표님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 한 분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날이 우리 집에 막둥이가 생긴 날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선생님은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고, 유기견센터에서 봉사도 오래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날의 대화 주제가 반려견은 아니었는데도,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동질감 같은 것. 마치 육아 이야기를 하는 엄마들처럼, 우리는 한 번 이야기가 열리자 멈추지 못했다. 나는 하봄이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렸고, 선생님은 반려견들과 반려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사이사이로, 한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들만 아는 표정이 오갔다. 아니, 나를 지켜주는 반려동물들이 있는 사람들만 아는 표정 말이다.
그러다 문득, 얼마전부터 마음에 얹혀 있던 생각이 스쳤다. 하봄이는 네 살에 우리 집에 왔다. 우리 아이가 가끔 말했다. "엄마, 하봄이한테 아기 때가 없어서 아쉬워." 그말이 한쪽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요즘 나는 하봄이와 조금씩 유대감을 쌓아가며, 내가 위로받는다는 감각을 처음 배우고 있던 터였다. 밖에서 아무리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집에 돌아와 꼬리치며 나를 반기는 하봄이를 보면 모든 시름이 잊히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반려가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 있다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되는 중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기회가 된다면, 아기 강아지를 입양하거나 임시보호를 해보는 것도 아이에게 좋을 지 모른다고.
하봄이를 입양할 당시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같이 해낼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열한 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 아이는 승마를 하면서 동물을 훈련시키고 고교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깨닫고 그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대화 중에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쭸다.
"혹시... 임보처 구하는 아기 강아지가 있을까요?"
선생님은 휴대폰 사진을 열어 보여주셨다. 미국으로 입양 가기 전 임보처를 를구한다는 이야기, 우리 집에서 키워서 보내는 건 어떻겠냐는 질문. 남편은 원래 진도개에 호감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지며 가족들과 상의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 네 자매 중, 하늘이만 남았다는 문자였다.이상했다. 인연은 은늘 이렇게 게 오는 것인가. 고민할 시간을 길게 주지 않고, '지금'이라는 문 앞에 세워놓는다. 우리는 급히 상의했다. 나는 임보를 떠올리고 고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한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상태인지라, 급하게 한 생명을 더 책임지는 것까지는 어렵다는 판단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실 '임시'라는 말로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남편과 아이는 뜻밖에 단호했다.
"임시보호가 아니라 입양이었으면 좋겠어."
"우리 입장에서는 임시보호지만, 저 아이 입장에서는 파양 아니야? 진도는 원맨독이래."
두 사람의 말에 내가 멈췄다. 맞았다. 어른의 말로는 임시보호다. 하지만 아이의 삶으로는 '왔다가 떠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날의 방향이 바뀌는 걸 느꼈다. 결국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잘 키워보자고.
그날 밤,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이야하다 보니, 임시보호와 입양은 생각보다 단순히 바뀌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임시보호하려다 입양으로 바꾸면 그냥 되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코코는 이미 미국 입양이 예정되어 있었다. 일정과 약속이 있는 아이였다. 이 약속을 뒤집는 일은 구조자님과 미국입양기관 사이의 신뢰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한 생명의 이동 뒤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나눠지고 있다는 것을.
하루가 지나, 크리스마스 저녁에 연락이 왔다.
코코의 입양이 승인되었습니다.
미국 쪽에서 이해해 주셔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는 이런 번복이 곤란하다고 하셨는데, 어찌저찌 일이 잘 풀렸다. 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기쁨과 함께, 안도. 그리고 조금의 두려움. 나는 또 한 번 어떤 생명을 우리 집으로 당겨온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이름을 지어놓은 상태였다. 원래 이름인 하늘이로 하고 싶었는데, 첫째가 하봄이다 보니까 두 마리의 이름이 비슷하면 서로 헷갈려 한다고 해서 아예 다른 이름으로 생각해 보았다. 크리스마스인데다 암컷이라고 하니 메리. 아니면 털의 무늬가 꼭 코코아를 떠올리게 해서 코코. 메리와 코코 중에서 아이가 가단번에 골랐다. 코코. 아직 오지도 않은 아이에게 이름을 먼저 불러준다는 건, 마음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코코는 그렇게 우리집 막둥이가 되었다. 두 달 반을 엄마 곁에 머물다가,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물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날짜는 11월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11월에 태어난 아이의 생일과 같은 날로 하기로 했다. 아이가 나서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생일파티를 같이하는 반려견이라니. 나는 그 때 생각했다. 이건 단지 귀여운 설정이 아니라, 아이가 코코를 가족의 날짜로 받아들이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고.
처음 만난 코코는 순둥순둥한 인상이었다. 성격도 수더분했다. 선생님이 데려다 주시기 전 목욕을 시키는데, 코코는 목욕물을 마시며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조용해졌다. 이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걸까. 내심 궁금하면서도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남편은 코코에게 앉아 훈련도 시켜보고, 터치 훈련도 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진짜 똑똑하다."
며칠이 지나, 어느 순간 남편과 아이가 같은 말을 했다. 서로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문장만은 똑같았다.
"이렇게 키우는데... 어떻게 보내."
그말이 나는 오래 남았다. 내가 임시보호라는 말로 시작했던 고민은 결국 '가족'이라는 말로 도착하고 있었다. 인연이 될라면 이렇게도 인연이 되는 것인가. 한 번의 식사 자리, 한 번의 질문, 한장의 사진, 한 통의 승인 문자로ㅡ한 생명이 우리 집의 겨울을 바꿔놓는 일.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우리가 코코를 데려온 게 아니라, 코코가 우리를 더 가족답게 데려와 준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