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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 우비

어른들 말씀은 잘 들어야 되

by 바람이머문자리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때, 산 날씨는 변화무쌍하니 우비는 꼭 챙기라고 선배님들께서 조언을 해주셨었다. 다만, 그 우비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이번 산행에서도 날씨대장님이 알려주신 날씨로는 출발 즈음 잠깐 비가 있었다. 다만 바람이 강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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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짐을 싸면서도 평소처럼 우비를 안 넣었다가, 마지막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어넣었다. 들머리에 도착해서 비가 안 오면 그냥 버스에 두고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기온도 10도 이상일 것으로 생각되어서 반팔에 바람막이 얇은 것 하나 챙겼다.


이번 구간은 거리가 22.5km라, 출발을 00시 30분에 하게 되었는데, 이 날도 이사 준비로 이래 저래 바빠서 잠을 거의 못 잤다. 그리고 00시 25분 출발. 중간에 휴게소에 멈췄는데, 너무 졸려서 휴게소에 내리지 않고 그대로 잤다. 그리고 4시 약간 넘겨서 들머리 도착. 보슬보슬 비가 내려서 어쩔 수 없이 우비는 가방에 담긴 채로 출발했다.



산행 2일 후에 집 이사를 해야 돼서 체력소모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끝내자는 마음으로 선두와 함께 시작했다. 선두대장, 기획2대장, 체조대장과 체조대장 아들로 구성된 4명이 선두였고, 나는 그 끄트머리를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구름 속을 들어간 느낌이 들더니, 계속 맞기 어려운 비바람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배낭커버를 하고 우비를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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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비를 입으면 내부 열기가 잘 배출이 안되어서 더워지는데, 이 날은 더워지지 않고 계속 선선했다. 그래서 온도계를 보니 7도 전후였다. 바람은 초속 15m/s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손이 시릴 정도여서 체감 온도는 0도 전후 아니었을까 싶다.


스물 여덟 번 백두대간을 걸어보면서, 오늘의 날씨가 최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온 날도, 바람이 분 날도 있었는데, 비바람이 있던 날은 처음 아닌가 싶었다. 속으로는 우비가 없었으면 진짜 추웠겠다 싶었다. 산행을 마치는 때까지 우비를 한 번도 벗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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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min 기준으로 25.5km가량을 걸었으니 산행 피로도는 상당했는데, 날씨가 크게 한 몫 했다. 점심도 바람을 맞으면서 쪼그려 먹었고, 많이 쉬지 못하고 출발했다. 가는 내내 선두의 대원들과 오늘 날씨가 다 했다고 투덜투덜하면서 걸었다.

10시간 30분 만에 구간을 완주했다. 우비가 없었으면 큰일 났을 뻔했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후미는 2시간 반 늦게 완주를 했는데,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다. 내려오는 대원들 모두 정신이 나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표정을 하고 하산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비는 꼭 챙겨야겠다.


이번 산행은 근육통이 3~4일 지속되는 것으로 봐서는 정말 만만한 산행은 아니었던 듯 하다. 2주 뒤에 또 24km 대장정인데, 벌써 몸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2주 뒤의 24km 대장정은 막내의 축구 대회 일정으로 빠졌다.)


2025. 5. 10 백두대간 37구간(이기령~댓재) / 난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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