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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가 먼저 쉬자고 하는 건 처음이야

백두대간 46구간 한계령~희운각대피소

by 바람이머문자리

“여보 잠깐 쉬었다 가자.”

이번 산행 오기 3일 전쯤 목이 부었는데, 산행 당일까지 완쾌가 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산행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중청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머리가 띵해서 잠시 앉아 타이레놀을 한 알 입에 넣으려고 잠시 주저앉았다.

지나가시는 대장님께서 괜찮냐고 물으시며 가방을 들어줘야 되냐고 물으시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았고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약 먹고 힘을 내서 다시 일어나 후미에서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아내가 “여보가 먼저 쉬자고 하는 건 처음이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아내와 함께한 20여 번의 산행동안 내가 항상 아내를 기다려 줬었고, 산행을 마치면 나는 아직 멀쩡한데라고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힘들었다. 그래서 중청 이후로는 아내를 많이 신경 써주지 못했던 것 같다.



둘째 딸도 이우학교를 다니고, 이우백두에서 21기로 백두대간을 걷고 있는데, 처음 한 번 빼고는 아이 혼자 보냈다. 매번 이우백두 20기와 산행 날짜가 겹쳐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6월 14~15일에 21기는 소백산으로 1박 2일을 가고, 20기는 설악산으로 1박 2일을 가는 일정이었다. 1박 2일을 둘째 딸 혼자 보내기가 미안했고, 둘째 딸은 부모와 함께하는 것을 첫째보다는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20기로 빠르게 백두대간 완주하는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좀 더 챙기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21기와 함께 소백산 1박 2일을 가기로 결정하고 설악산은 포기했었다.


첫째 아이가 그날은 자기 약속 있다고 해서, 아내는 셋째를 돌봐야 하여, 나와 둘째만 소백산에 가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런데 산행 직전 목요일, 둘째 딸이 학교 가다가 발목을 다쳤다고 전화를 해왔다. 그래서 하교 길에 정형외과를 들러 보자고 하고, 정형외과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으면서, 둘째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속으로 ‘설악산 갈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 더해 둘째가 셋째를 돌보면 되니까, 아내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설악산을 갈 수 있다고 20기 대장님들께 알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몸이 안 좋아서, 좀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아내가 물었다.

“여보는 설악산이 왜 가고 싶어?”

“그야 국내 최고의 산으로 꼽히니까 그렇지.”

그리고는 그날 공유 받은 설악산 관련 영상을 공유해줬다. 나는 설악산을 못 가는 마음에, 그날 아침 영상을 정주행 했었다.


다음날, 아내는 급작스레 설악산을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토요일 새벽 3시 출발이니까 출발까지 하루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토요일 새벽에 비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희운각 대피소는 취소가 많아서 25자리나 남아 있었다. 대피소도 해결되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전 6~8시 약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새벽 3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고, 한계령에 5시 10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보니, 비는 오지 않았고, 주변 풍경이 기존까지 봐왔던 산과는 달랐다.

‘나 설악산이야!’라고 뽐내고 있는 듯 보였다.


아내가 요즘 요양보호사 실습한다고 피로한 상태라 아내랑 뒤쪽에서 찬찬히 가야겠다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나도 약간의 두통이 있었지만, 심하진 않아서 산행은 할만했다. 걸어 오르면서 ‘지리산보다는 수월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도 겉히고, 날이 개고 있었다.

대청봉까지 점점 파란 하늘이 되면서 멋진 풍경을 즐기면서 갈 수 있었다. 날이 좋아지는 것과 반대로 중청에 다가갈수록 내 몸 컨디션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중청에 도착했는데 대청봉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가방 두고 대청봉을 오르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자는 마음으로 아내도 못 챙기고 올라갔다. 대청봉에서도 사진은 찍는 둥 마는 둥 하고 빨리 중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다시 중청으로 내려와서 부랴부랴 밥을 먹었다. 물을 얼려갔는데 녹지 않은 탓에 물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다른 대장님의 물을 빌려서 얼음을 녹였다. 이제 희운각 대피소까지만 가면 되는데 여기부터가 폭풍 내리막이라고 들어 알고 있었고, 중청에서 가방을 들고일어났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고 머리가 띵 했다. 그래서 잠시 앉아 타이레놀을 먹으려고 아내에게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했던 것이다.



정말로!!! 여기부터는 100m의 거리가 500m처럼 느껴질 정도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얼른 대피소에 가서 몸을 뉘이고 싶어서 그런지 희운각 대피소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마침내 저 멀리 희운각 대피소가 보였다.


도착해서 짐 풀고 라면, 소시지, 오리고기를 부랴부랴 먹고는 타이레놀 두 알을 입에 털어 넣고 대피소 바닥에 누웠다. 자다 깨다 한 것 같고, 2시 정도에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새벽인데도 춥지는 않았다. 하늘에 별이 보였지만 별을 즐길 정신 상태는 아니어서 얼른 들어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


산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대피소가 처음인 아내를 위해 매트나 베개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 무척 미안했다. 갑자기 가기로 결정해서 준비할 시간도 없었지만 생각도 못했던 것은 반성을 하게 된다. 다음에 지리산에 가게 되면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해줘야겠다. (슬리퍼, 매트, 베개, 이불....등. 무겁겠는데…)


내가 몸 상태도 안 좋아서 아내가 잘 자는지도 돌보지 못했다. 미안하다. 산행을 오기 전엔 좀 더 내 건강을 챙겨야겠다.


[산행기록]


2025. 6. 14 백두대간 46구간(한계령~희운각대피소) / 난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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