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을 올리는 신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남편이 수술대에 오른 날, 나는 매
남편이 내 브런치 이름을 지어줬다.
매출을 올리는 신. 줄여서 매올신.
조금 웃기고, 조금 귀엽고, 조금은 대놓고 욕심나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이름은 단 한 번에 통과됐다. 나는 그게 괜히 좋았다. 누가 봐도 센 이름인데, 남편이 붙여준 이름이라 더 애틋했다.
내가 장사를 하며 버티는 마음,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 어떻게든 살아내고 싶은 의지가 그 이름 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3월 19일 하루 동안,
나는 매출을 올리는 신이 아니라
그저 남편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강릉아산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원주가 아닌 강릉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지만, 믿고 맡기고 싶은 교수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길은 가야 할 길이 됐다.
수술만 잘 끝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거 하나만 바랐다.
처음 들은 수술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다.
그런데 수술은 오후로 밀렸고, 남편과 수술 전 통화할 때는 오후 2시에 시작된다고 했다.
빨리 끝나면 4시간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막연히 6시쯤이면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사람은 예상이 깨질 때 무너진다.
6시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조금 늦어지나 보다, 하던 마음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
혹시 수술 중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일이 이미 벌어진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은 머리로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았다.
7시쯤이 되자 정말 몸이 떨렸다.
시간은 10분 단위로 갔는데, 내 마음은 몇 시간씩 뒤집혔다.
안내데스크에 물어봤더니 아직 수술 중이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무너지게 하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결국 간호병동에 직접 통화를 했고, 그제야 실제 수술 시작 시간이 3시 30분이었다는 걸 알았다.
수술이 늦어졌고, 곧 끝날 거라고 했다.
곧 끝난다는 말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위로이면서도 형벌이다.
곧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병원에서 오래 기다렸다.
중간에 잠깐 모텔에서 3시간쯤 쪽잠을 잤고, 카페에서 3시간을 보냈고, 다시 병원 대기실에서 4시간을 버텼다.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요거트 스무디 한 잔.
그게 내가 먹은 전부였다.
집에 와서 보니 몸무게가 2킬로가 빠져 있었다.
물론 밥 먹으면 다시 돌아올 숫자겠지만, 그날의 나는 정말 몸도 마음도 바닥까지 닳아 있었다.
그러다 밤 8시 50분,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이동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날 처음 받은 문자였다.
끝났구나.
무사히 끝났구나.
문자 한 통에 사람이 다시 숨을 쉬게 되더라.
그제야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빠졌다.
그런데 안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기차를 타고 강릉에 갔고, 원주로 돌아오는 막차 시간을 맞춰야 했다.
아들이 10시 30분 막차가 있다고 알려줬다.
놓치면 모텔에서 자고 다음 날 남편 얼굴을 다시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이 8시 50분에 끝났고, 어쩌면 막차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9시 30분쯤 남편이 회복해서 병실로 올라왔다.
나는 남편 얼굴을 보고 기차를 예매했다.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말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고생했다고, 무서웠겠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하고 싶었다.
“진짜 나 얼굴 못 보는 줄 알았어. 고생했어. 힘들었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편이 울컥했다.
그때 나는 그저 수술이 힘들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남편과 통화하고 나서야 그 울컥함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남편은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그리고 척추마취를 받고 수술하던 중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중요한 왼쪽 무릎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몸이 축 처지고 이상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숨을 크게 쉬라고 했다고 했다.
탈진이 온 것 같았다고 했다.
물을 마실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버텼다는 말을 듣는데, 나는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못 볼 뻔했던 걸까.
남편이 어제 울컥했던 건 단지 수술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정말 가족을 못 볼 뻔했다는 공포 때문이었을까.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겪은 기다림조차 미안해졌다.
나는 병원 복도에서 초조했고, 대기실 의자에서 떨었고, 막차와 택시를 걱정했다.
그런데 남편은 수술대 위에서 자기 몸이 이상해지는 걸 느끼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양쪽 다리 수술을 다 했다.
수술 전에도 걸을 때 무릎이 너무 아파 절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수술까지 결심했겠나.
그런데 지금은 수술 전보다 더 아프다고 한다.
낫기 위해 선택한 일이 당장은 더 큰 통증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더 자꾸 후회가 남는다.
그날 밤, 남편에게
“자기야, 나 차 시간이 돼서 이제 그만 가야 돼.”
라고 말하고 나온 내가 자꾸 마음에 남는다.
조금만 더 있다 올걸.
막차를 포기하고 옆에 있을걸.
하지만 또 그날의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너무 겁에 질려 있었고, 너무 급했다.
병원 앞에는 택시도 없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려는데 카드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손이 떨렸다.
예전에 서울에서도 막차 때문에 비슷한 일을 겪고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강릉에서 또 같은 상황을 만나니 서럽고 화가 났다.
결국 10분 만에 카드를 등록하고 택시를 불러 강릉역에 10시 5분쯤 도착했다.
그렇게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마음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직도 내 마음 한쪽은 병원 복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매올신이다.
매출을 올리는 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날은 매출보다 무사함이 먼저였다.
어떤 날은 장사보다 한 사람의 숨과 통증과 회복이 더 중요했다.
어떤 날은 잘 팔리는 문장보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이 한마디가 세상에서 제일 간절했다.
남편이 지어준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는데,
정작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의 무사함 앞에서는
나는 너무 작고 평범한 사람 하나가 되더라.
그래도 나는 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남편은 조금씩 회복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덜 아프게 걷고, 덜 힘들게 일어나고, 예전보다 편한 다리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믿어보려고 한다.
3월 19일은 내게 아주 길고 무서운 하루였다.
그리고 3월 20일은 그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그래도 결국 내가 붙잡고 싶은 건 하나다.
정말 힘들었지만, 남편이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직 이렇게, 남편이 지어준 이름으로 그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
매올신이라는 이름은
매출만 올리라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삶을 버텨내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