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체코 원전을 수주했다는 뉴스를 접하신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대규모 공사이기에 국가적인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늘도 분명히 존재하죠. 사실 몇 년 전 UAE 원전을 수주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뉴스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이런 대규모 공사를 수주할 때는 독소조항이나 손해를 감수하고 따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수주가 국위를 선양함과 동시에 제대로 외화를 벌어올 수 있는 계약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결국 밥이 다 된 뒤 뚜껑까지 열어봐야 최종 판단을 할 수 있을 듯해 보입니다.
저는 전력회사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소신으로는 필요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영화 <판도라>에서 보이는 모습이 영향을 미친 부분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원전 1기가 지진으로 인해 파괴되면서 일어나는 재앙에 대해서 다룹니다. 발전소 한 기만 파괴되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국가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이 이야기 속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게 되었죠.
물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영화는 과장된 부분이 꽤 많다고 단언했지만 마냥 그 말만 믿고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발생했던 끔찍한 대규모 재난은 인간이 예측한대로만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원자력발전소는 기본적으로 내진설계를 비롯한 안정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거기에 사용 후 핵연료, 일명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도 중요한데 이 점이 상당히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카이스트 정용훈 교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원전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 1만 8900t 분량이 처리되지 못한 채 대부분 원전 내 습식 시설에 임시 저장돼 있다고 합니다. 습식 저장시설은 한빛원전은 2030년, 한울원전은 2031년, 고리원전은 2032년이 포화 마지노선입니다.
그 시점부터는 가동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의미죠. 이런 사정이지만 방폐장 부지 선정부터 난항을 겪고 있기에 해결까지 이르기에는 아직 요원한 상황입니다. 그 누구도 내 집 앞에 이런 시설이 만들어지는 상황을 원치 않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정책은 프랑스나 독일처럼 점차 원전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몇 가지 민감한 현안들이 겹쳐지면서 그런 제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첫 번째가 우리나라가 일단 친환경 발전에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특히 태양광과 관련된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발전비용은 물론 발전단가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갈뿐더러 폐패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 큰 환경오염이 발생하기도 하죠. 태양광은 기본적으로 부지도 많이 필요한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두 번째가 세계적인 연료비 상승입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적은 연료비용으로 꾸준히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은 매력적인 카드죠. 특히 독일을 비롯해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았는데 전쟁으로 인해 큰 에너지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로 인해 프랑스나 영국은 원전을 점진적으로 줄이겠다는 정책을 뒤집을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세 번째가 전기 먹는 하마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기차나 데이터센터처럼 전력소비가 큰 녀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데이터센터의 소비 전력은 점점 커지고 있죠. 미국은 2027년이면 전체 전력 사용량의 14%를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리라는 전망까지 내놓았으며 우리나라는 2029년에 원전 30기가 더 필요한 수준으로 사용량이 증가한다고 예측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더욱 발달하면 할수록 전력 사용량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이유들로 인해 안전에 대한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원자력발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점 내몰리는 셈입니다.
안정적이고 깨끗한 신재생에너지는 결국 인간이 지구를 지키고 오랜 시간 동안 살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예상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까지는 자리 잡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작금의 현실이 점점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