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제 야간근무를 마친 뒤 곧바로 오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왔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하실 듯한데요.
직장동료 두 명과 함께 또 한 분의 직장 선배가 근무하는 제주도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제 목숨은 소중하고 하나뿐이기에 아내에게 용서가 아닌 허락은 미리 구해두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양해를 구해놨고요.
원래 친하게 지내던 선배 중 한 명이 제주도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던 터라 육지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함께 한 번 가기로 되어있기는 했습니다.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네 명의 날짜가 맞아져서 모임을 추진하게 되었죠.
보통 직장에서 형 동생 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웬만하면 그렇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12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선배들이다 보니 서로의 성향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 일정의 여행은 고민의 여지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누군가와 마음과 일정을 맞춰서 여행을 가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이번 여행의 테마는 미니멀 플랜입니다. J형 성향이지만 계획을 최소화하고 싶은 제 바람을 저 혼자 담았습니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닙니다. 제주도는 좋은 섬이지만 자주 와봤기에 이제 그곳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란 이제 거의 없으니까요.
놀랍지만 다른 선배들도
비행기표와 이틀간 머무를 숙소와 식당 한 끼만 예약되어 있음에도 그 이상의 일정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없어 보이더군요. 여행 출발 하루 전까지도 말이죠.
그냥 어떻게 되겠지.
원주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뭘.
같이 간다는 점이 중요하지.
제주도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이런 마음인 모양입니다. 현미경처럼 꼼꼼하게 계획해서 가는 여행도 장점과 특색이 있지만 가끔은 이런 경험도 해봐야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서야 선배들은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더군요.
제가 계획하고 있는 부분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숙소는 서점형 게스트하우스에서.
식당은 흑백요리사 백수저 식당으로.
일단 숙소를 그렇게 하기로 정한 이유는 저를 제외하고 세 분은 단 한 번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어본 적이 없어서였죠. 처음에 호텔을 예약해야 되지 않냐는 말을 하길래 다급하게 만류를 한 뒤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안타까웠던 점은 제주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꽤 많은 곳이 나이 제한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 한 부분이었는데 상당히 서러웠죠. 중년 아저씨들은 여기서 또 한 번 웁니다.
다행히 조용하고 남자 4인실이 가능한 곳으로 찾다 보니 서점 형태로 된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발견했고 예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좋아!!!
그리고 식당은 백수저로 출연한 오세득 셰프의 오팬파이어와 김승민 셰프의 모리노 아루요 방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흑백요리사 출연자들의 식당에 가기 위해서는 정말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데 이곳은 그 정도는 아닌 듯해서 기대가 큽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첫 번째 일정은 곧바로 버스를 타고 용두암으로 가는 일입니다. 용두암을 이렇게 옆에서 제대로 된 모양으로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랍니다. 제주도를 열 번을 넘게 왔었는데도 말이죠.
용두암을 떠나 동문시장으로 이동한 뒤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들어가서 첫날 일정은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보통 저 같은 중년의 아저씨들은 가족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을 잘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간다고 봄이 옳죠. 친구가 엄청 많은 일부 경우가 아니고서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죠.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는 사라지고 있는 관계도 소원해지기 일쑤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기회는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여행을 오게 되니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편협한 생각을 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더 노력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건강관리는 당연한 부분이고요.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 사진처럼 멋지고 스타일 좋은 중년, 멋진 장년이 아니라
꿈꾸는 중장년은 이러하나
이런 모습의 답답한 꼰대, 아재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나이라는 숫자로만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며 그건 진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현실은 한사랑산악회!
둘째 날인 오늘은 호우주의보가 잠시 발령될 정도로 엄청나게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계획했던 트래킹은 포기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카페투어와 미식투어로 바꿔서 진행 중입니다. 아저씨들끼리 있어서 재미가 없을 법도 한데 술 대신 차를 마시면서 쉼 없이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죠.
이렇게 중년 아저씨들의 제주도 여행은 악천후에도 계속됩니다. 이 또한 소중한 시간이며 추억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