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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Oct 30. 2024

발리 우붓에서 새로 태어난 협상의 달인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이번에는 발리 우붓 여행 4탄입니다. 비행기 지연 출발부터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우붓에서도 당연히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겠죠? 지금 돌아보면 재미난 추억이지만 그때는 여러모로 난감했던 일화 하나가 생각나서 써보려고 합니다.




여행 둘째 날 일정은 우붓 시내 구경이었습니다. 숙소에서는 우붓 왕궁 쪽으로 나가는 셔틀을 운행하고 있었는데 미리 예약하면 근처까지 태워주고 시간 맞춰서 태우러 오는 그런 시스템이었죠.


나가는 길은 제법 험난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붓 도심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정말 보름 정도의 변비처럼 꽉 막힌 도로 그 자체였으니까요.




왜 발리 우붓에서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낫다고 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죠. 길에서 봤던 수천 대가 넘는 오토바이들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저희는 걸어서만 다니기는 했습니다.




호텔에서 나올 때도 큰일이 없었고 구경도 잘 마쳤는데 큰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 발생했습니다.

네 시 반에 태우러 오기로 한 호텔 차량이 펑크를 내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죠. 이상하다 싶어서 호텔 측에 어렵게 연락을 했더니

호텔에 사정이 생겨서 차량을 보내주지 못했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오면 요금을 우리가 내겠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체할 수 없었기에 일단 픽업을 하러 오는 주차장 근처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근처에 택시 기사들이 제법 있었는데 한 사람을 정해 물었습니다.

차풍 세발리라는 호텔로 가려고 한다. 갈 수 있나?

당연하지

요금은 얼마냐

20만 루피(17,000원가량)다

비싼 편이었지만 호텔에서 비용을 부담한다고 했기에 흥정 없이 바로 알겠다고 말한 뒤 대화를 이어갑니다.


오케이, 그런데 니 택시는 어디 있느냐

오우! 걱정 마. 내 차는 이 근처 2분 거리에 있어. 금방 가지고 올 테니 기다려.


"방금 막 배달 출발했어요"라는 말처럼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선택지가 없었기에 기다리겠다고 답을 했고 그도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생겼습니다. 이 양반도 10분이 지났음에도 함흥차사가 되어서였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거리에는 차가 꽉 막혀서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까요. 기사가 차를 어디서 가져오든 간에 이곳까지 가져오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분 넘게 기다리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타지 않고 호텔까지 걷기로 결정합니다. 물론 다들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도로 사정을 보고 나서는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도심에서 숙소까지는 딱 한 시간이 소요되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우리가 지나는 경로가 우붓에서 꼭 가봐야 하는 하이킹 코스로 꼽히는 짬뿌한 릿지 워크였다는 점이었죠.




힘들었지만 열심히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택시 기사가 도로에서 우리를 발견해 주기를 바랐지만 길이 갈라지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갔음에도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던 거죠.




한 시간이나 걸어야 해서 힘들었지만 즐겁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모토였던

"오히려 더 좋아!"


를 입 밖으로 계속 외치면서 말이죠. 덕분에 눈으로 다양한 풍광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죠.




그렇게 6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로비로 향합니다.


호텔에서는 택시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는데 택시를 못 타고 걸어왔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 돈만큼을 달라고 하기는 모양이 좀 없어 보여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클레임이나 흥정, 협상은 말을 논리적으로 조곤조곤하는 담당이라 데스크 쪽으로 가서 협상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너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우리 정말 힘들었다.

택시를 타라고 해서 20만 루피를 내고 타려고 했는데 그 택시마저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그는 2분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15분이 넘도록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1시간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힘들게 걸어왔다.

이 문제는 호텔 측에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냐?


라고 말이죠. 영어로 했습니다.




처음에 거기서는 미안하게 되었고 그러면 다음 날 애프터눈 티를 제공해 주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아내가 옆에서 듣다가 뭐라도 해준다고 하니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려고 합니다.

저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손짓으로 아내를 제지했죠.


그러고서는 다시 협상에 들어갑니다.

내가 생각에는 애프터눈 티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데 이게 너희의 가장 최선의 제안이냐. 다른 제안은 없느냐?


결국 고민을 하던 책임자가 다음날 가족 네 명에게 30분씩 마사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해서 이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많이 걸어서 힘들었지만 마사지를 받는 소소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죠.


언제나 한 번 더 제안하기가 어려운데 용기를 내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서 좋았습니다.

저도 영어로는 화내는 재주가 없어서 손짓 발짓, 표정까지 섞어가며 차분히 말했습니다. 호텔도 "어, 그건 별로야? 그럼 이건 어때?"라고 쿨하게 처리해 줘서 협상은 타결되었고 서로 악수까지 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호구가 될 뻔했다가 되려 진상 손님이 될 뻔했는데 차분하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죠.


한 줄 요약 : 호구와 진상 사이. 그 중간 어디쯤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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