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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의 패소로 받은 9,700억 원의 배상판결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며칠 전, 정말 놀라운 문자를 받았습니다. 바로 제가 후원하고 있는 환경단체 그린피스로부터 였는데요, 그 내용을 읽고 잠시 멍해졌습니다. 미국의 대형 송유관 기업이 그린피스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린피스에게 약 9,700억 원에 달하는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설마 했습니다. 환경단체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해를 끼쳤을까?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소송의 배경과 판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송이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시민 사회가 지켜왔던 가치와 행동의 자유에까지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을 말이죠.




2016년, 미국 노스다코타 주에서는 대규모의 송유관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린피스는 해당 사업이 원주민 보호구역과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이 시위에 연대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불법적 행동’을 조장하거나 사주했다는 이유로 송유관 기업이 그린피스를 고소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 배심원단은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파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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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떤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된 시위인지, 어떤 부분이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로 해석될 수 있는지는 따로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많은 시민들이 이 판결을 접하며 느낀 감정은 ‘놀람’을 넘어선 ‘당혹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단지 하나의 단체가 받은 판결이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입을 열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좌우할 수 있는 전례가 남을 수 있어서입니다.


환경단체, 인권단체,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본질적으로 수익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이득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되는 곳들입니다. 그동안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국가나 기업이 미처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일들을 대신해 왔습니다. 때론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때론 취약계층의 권리를 위해, 때론 지구의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지요.




그런데 만약 이번처럼 기업이 단체의 활동을 문제 삼아 막대한 소송을 걸고, 실제로 그것이 인정받는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소위 ‘SLAPP’(공적 참여를 억누르기 위한 전략적 소송)이라고 불리는 방식처럼, 재정이 취약한 시민단체들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단체의 활동을 지지하던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 또한 결국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


이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그린피스라는 단체가 가진 영향력 때문입니다. 그린피스는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서, 국가와 정부가 무시했던 문제를 꾸준히 알려온 단체였습니다. 후원자수도 최소 3백만 명에 달한다고 알려진 곳이죠. 어떤 나라에서는 불법 벌목을 막았고, 어떤 지역에서는 바다 생태계를 지켜냈습니다. 때로는 발전 산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가장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화면 캡처 2025-06-15 182414.jpg



2023년 기준 글로벌 비영리 조직 시장 규모는 약 2.2조 달러로 추정되며, 2032년까지 연평균 6.1% 성장해 3.8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만 기준으로 했을 때 2023년에 기부한 금액은 총 5,571억 달러나 되며 비영리 단체가 전체 고용의 10% 넘게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제적 비영리 단체는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주요 섹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단체 중에서 큰 역할을 하던 그린피스가 9,700억 원이라는 배상금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게 된다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단체는 과연 있을까요? 정부도, 기업도 하지 않는 일을 해온 단체가 사라진다면, 그 피해는 결국 시민 모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법의 판단은 존중받아야 하나 역사적으로 법이 항상 정의로운 쪽에 서지 않은 적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시민의 눈과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또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거대 자본과 힘을 가진 기업 앞에 설 수 있는 시민의 방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방패를 지키는 일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고 있는가, 그걸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 문제와는 별개로 그린피스를 계속 후원할 생각입니다. 이번 일에 그들의 실책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그들이 해온 수많은 의미 있는 일들이 있기에, 단 하나의 실수나 논란으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지지했단다.” 그게 꼭 위대한 행동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면하지 않은 작은 선택이었노라고.


한 줄 요약 : 그린피스에 대한 이번 판결은 단체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지키는 법과 사회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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