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F학점에서 필즈상, 그리고 파행으로 가는 기념관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며칠 전 안타까운 뉴스를 하나 접했습니다. 허준이 기념관 건립이 착공도 못 한 채 김현규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장마저 사임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26년 세계수학자대회 역사상 한국계 최초의 필즈상 수상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려던 공간이 기관 간 다툼으로 파행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습니다.




허준이 교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면 더 그렇습니다. 1983년생인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2살 때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이 땅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검정고시를 치른 뒤 서울대를 입학한 독특한 이력이 있죠. 결국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성적표에 F가 수두룩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4학년 때 히로나카 헤이스케 석좌교수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들으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009년 서울대에서 석사까지 마친 뒤 미국 12개 대학에 박사 지원을 했는데 합격한 곳은 단 한 곳, 일리노이대뿐이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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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박사 과정 중 수학계 난제 리드 추측을 풀어내며 미시간대학교의 러브콜로 자리를 옮겼고 2014년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11개의 수학계 난제를 해결하며 2022년 7월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결국 필즈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입니다.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결코 작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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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여러 사업들이 추진되었습니다. 그의 필즈상 수상을 기념해 젊은 수학자들을 육성하고 난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고등과학원(KIAS) 내에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가 문을 열었죠.


그리고 허준이 기념관도 추진되었습니다. 영국 뉴턴 수리과학연구소나 캐나다 필즈 수리과학연구소처럼 세계 각지의 수학자들이 수개월씩 장기 체류하며 교류하는 이른바 '수학 마을'이었죠. 정부도 총 공사비 22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뒤 2024년에는 KAIST 서울캠퍼스 내에 지하 3층·지상 2층 규모로 건립을 확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을 공동 사용할 KAIST와 고등과학원이 공간 운영 방식과 명칭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예산 대부분이 집행되지 못했습니다. 허준이기념관을 KAIST 서울캠퍼스에 짓기로 했는데, 부지는 KAIST가 제공하고 건축비는 고등과학원이 확보하는 구조입니다.


KAIST는 연구실을 공동 관리 대상에서 빼자고 주장하고, 고등과학원은 전체 공간을 수학 연구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고 맞섭니다. 명칭도 쟁점입니다. KAIST는 용도 중심 명칭으로 바꾸자는 입장이고, 고등과학원은 설립 취지를 살리려면 허준이기념관이라는 이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피해는 연구에 매진하려는 수학자들이 받고 있죠. 연구자들은 임시 건물에서 인근 공사 소음을 견디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고, 결국 2026년 3월 연구소장이 사임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면서 한국 학계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준이 교수 같은 세계적인 수학자를 배출했고 필즈상이라는 쾌거까지 이뤘지만, 정작 그 연구자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 행정적 지원, 제도적 뒷받침은 거의 없었다는 의미니까요.


연구소는 임시 건물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옆에서는 공사 소음이 들려오는 상황에서도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무관심에 가까운 이런 현실은 기초과학에서 노벨상과 같은 실적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성과가 나오면 국가가 나서서 환호하기만 하면서 정작 그 성과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는 무관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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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교수는 한국에서 석사까지 취득했지만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꽃을 피우지 못해 미국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런 안타까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기관 간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연구자의 환경을 우선으로 두는 결정이 가장 필요합니다.


한 줄 요약 : 허준이 기념관 파행은 성과에는 숟가락을 얻으려고 하면서 연구 환경은 외면하는 한국 학계와 정부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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