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시간 만에 다녀온 고향 -(1)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이번에 뜻하지 않게 단 28시간 만에 집에서 출발해서 돌아오는 일정으로 부산을 거쳐 고향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강행군을 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계신 막내이모와 외할머니를 찾아뵙기 위해서였죠.
막내이모께서는 유방암 4기로 진단을 받으신 뒤 지금은 폐에까지 전이되어 상황이 좋지는 않으셨습니다. 평소 제가 어렸을 때도 늘 웃으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분이셨고, 외가 쪽 어른들을 통틀어 가장 많이 웃으시고 낙천적인 분이셨기에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고단했죠.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 보니 가끔 전화로만 안부를 여쭐 뿐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의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하셔서 찾아뵙게 되었죠. 이모의 모습은 반년 전에 서울에서 만나 뵈었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 보이시더군요. 잠시 동안 말문이 멎는 느낌이었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야말로 리액션이 고장 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은 참으려고 노력한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심하지는 않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무기력한 기분도 들어서였죠. 곁에서 자리를 지키시며 함께 싸우고 계신 이모부께서도 많이 수척해지셨더군요. 그래도 끝까지 밝게 병마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모를 보면서 응원의 마음을 전한 뒤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는 진해로 온 뒤 오랜 시간 병상에 계셨던 외할머니도 뵈러 갔습니다.
외할머니의 상황은 훨씬 더 좋지 않았습니다. 치매는 물론 노령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셨으니까요. 99세의 노령으로 천수를 다 누리셨다 할 연세이기는 했습니다. 이미 꽤 오랜 시간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셨고 이제는 가족들도 거의 알아보지 못하시더군요.
아내, 사촌동생과 면회요청서를 쓰고 중환자실로 들어가 할머니를 뵈었을 때의 기분은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모를 뵈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제게 인자하게 맞아주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너무 마르셨더군요. 그야말로 영겁의 고통을 견디려고 노력하시면서 수액 한 줄로만 겨우 버티고만 계시는 듯했습니다.
치매와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고향에 올 때마다 핑계를 대면서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렇게 뵈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병원에서 이생과의 끈을 근근이 유지하시도록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해 외가 어른들이 가장 고생하시고 계셨고 제가 감히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기에 입 밖으로 꺼낼 생각도 못했지만 많이 힘들어 보이셔서 보는 제 마음도 힘들더군요.
두 군데의 병원을 다녀오면서 많이 심란했습니다.
두 분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안쓰럽고 제 무심함에 대한 죄스러움도 가장 컸죠. 제가 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지만 무언가는 부족하지 않았겠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모께는 건강하시라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 드릴 수 있었지만 할머니께는 병원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일도 힘겨웠다는 점도 더 그러했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보호자의 한 사람으로서 겪어야 할 일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직접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의 무상함,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뒤에는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죠. 아직은 철이 덜 들어 내게는 먼 이야기라면서 계속 미뤄두고 지금 생각할 필요 없다 여겼던 일에 대해서 잠시나마 깊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