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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Dec 24. 2021

재활용품과의 전쟁

Pet병 압축기를 향한 꿈

저희 집에서는 네 군데의 비영리단체에 기부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유일하게 사람이 아닌 자연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그린피스의 해양동물 프로젝트입니다. 아이들이 바다거북이 플라스틱을 먹이인 줄 알고 먹는 장면을 tv 광고를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뒤 후원을 결정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 우리 집은 재활용품 사용에 대해 조금은 더 엄격해졌습니다. 실천력이 강한 훌륭한 분들처럼 no플라스틱 생활을 추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이라도 미약하나마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일회용 비닐장갑이나 비닐봉지를 최대한 쓰지 않고 마트에 갈 땐 장바구니나 종이박스를 이용하며 플라스틱 페트병은 라벨(비닐 부분)을 분리해서 배출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여름 흥미로운 이벤트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투명 페트병 수거 행사였습니다. 주민센터에 투명 페트병을 30개 반납하면 종량제 봉투 한 장을 준다 내용이었습니다. 투명 페트병은 그나마 플라스틱 중에서 자원재활용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동안 투명 페트병은 공동주택의 일반 분리수거에서 따로 분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자체에서 이런 기획을 하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페트병 30개를 언제 모으나 하던 찰나 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반납 횟수가 7번 누적되면 페트병 압착기를 사은품으로 추가 제공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까짓 거 사도 되는 물건인데 갑자기 진심으로 그 선물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 시점 이후로 굉장히 페트병을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바꿔보니 보람도 있었습니다. 아이들과도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교환하는 것을 직접 해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의지에 찬 서리를 내리는 몇 번의 시련을 맞게 됩니다. 처음 겪었던 시련은 종이팩 사건입니다. 페트병뿐만 아니라 종이팩 수거도 행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모았는데 종이팩은 1kg당 휴지 하나와 종량제 봉투가 한 장이었습니다.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종이팩 1kg은 한 달 이상 모아야 합니다. 두 달 가까이 2kg에 가까운 종이팩을 모아 설레는 마음으로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은색으로 된 종이팩은 받지 않는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그때 첫 번째 거절을 당했습니다. 종이팩을 말려서 다 찢은 뒤에 펼쳐서 가져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날 저녁 다시 저는 종이팩을 아이들과 일일이 찢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펼친 채로 모아놓은 종이팩들을 들고 호기롭게 주민센터를 방문했죠.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안쪽 부분이 은색으로 코팅된 종이팩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결국 저는 그 자리에서 은색으로 된 종이팩들을 다시 차곡차곡 분류해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가서는 아이들과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종이팩 모으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했죠.

종이팩을 모아서 교환한 휴지는 아까워서 꽤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할 듯..

그나마 페트병은 순조롭게 7번의 횟수를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지난주까지 총 6번의 교환 횟수를 채웠는데 올해 이 행사가 끝난다고 담당자가 이야기를 해주신 겁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제 마음은 굉장히 다급해졌습니다. 일정상 다음 주 30일과 31일(목, 금)이 마지막으로 가능한 교환일인데 그때까지 투명 페트병 30개를 어떻게 모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라스틱을 어떻게든 적게 쓰고 안 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30개를 쓸지를 고민하는 제 모습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환경이 아닌 사은품에 눈이 잠시 멀어버린 사람이 돼버린 듯해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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