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밀도가 떨어질 때가 있다.
너무 애를 쓴 나머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요즘은 ‘번 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이라는 병으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울증의 한 종류로 용어의 정의 그대로 ‘다 불타서 없어진다’ ‘소진된다’ ‘연소된다’ ‘탈진된다’ 등 한 마디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단순한 우울의 증세와는 다르게 조울증과 같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격하게 의욕적이다가, 한 순간 기력을 잃고 넉 다운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나라, 대한민국.
우리는 병에 걸렸던 안 걸렸던 모두가 잠재적 번 아웃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다 아는 사실이다.
마음은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넋 나간 몸뚱이만 멀쩡히 돌아다닌다. 자신을 투명하게 알지도 못하고, 나는 나를 상상한다. 누군가 그려주고, 알게 모르게 포개진 도둑 같은 이데올로기로 근사하게 조작된 나.
자연은 불이 나거나 망가져도 스스로 치유하고 질서를 지키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매일매일 깨어지고 있다.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그리고 어렵게 깨닫는다.
극복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인 것을.
여행은 평등하다.
그리고 언제나 옳다.
내가 살던 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엉뚱한 곳에 가서 찾는, 다소 논리적이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는 나의 모습을 관찰함으로 답을 얻을 수 있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에 놓이는 것이고, 그것에 따른 보상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모르는 곳에 가면 몸과 마음은 움츠려 들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흥분과 불안’ 사이의 묘한 쾌감을 경험하면서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쉬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긴장과 집중을 번갈아 사용하여 ‘낯 설음’에 도전하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삶은 고통이나 상처, 나쁜 기억까지 익숙함을 선물하고 벗어나기 힘든 안락을 제공한다. 익숙하다는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고, 그곳에는 어떠한 이성적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은 떠나도 괜찮다.
어떠한 도시나 장소를 한 번만 다녀오는 것은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 지나치는 것과 같다.
잠깐이라도 살아 보거나 반복적으로 방문할 때 비로소 그곳이 보이고, 나를 품을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고,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말없이 나의 주변을 서성이다, 한꺼번에 내어주지 않던 답을 조금씩 꺼내 보인다.
여행의 묘미이다.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보면 타고 싶다.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그 거대한 기구 안에 떠가는 동안 휴대폰은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비로소 암암리에 합법적으로 승낙된 자유시간이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행복한 나의 시간이다.
훌륭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가방을 싸는 순간 시작된다.
삶은 이미
여행 상태이거나
떠나기 시작했거나
언제나 이동 중이다.
2017. 스위스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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