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입원과 수술 그리고 파란 공포 1
“환자분 눈 떠보세요!”
“수술 끝났어요! 환자분 눈 떠보세요!”
윙윙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깜박깜박… 껌벅껌벅…. 윽! 아프다!
‘깨우지 말지… 너무 아프잖아!’
온 힘을 다해 엄지손가락을 까닥여 본다. 아프지만 확인해야 한다. 아…프다!… 그래도 까… 딱…까…까… 닥……. 엄지와 검지까지… 손가락이 움직인다. 아니 움직이는 것 같다.
“아.. 파.. 요..”
“지금 진통제 들어가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다시… 까… 딱….. 간신히 손가락이 움직인다. 그래 손가락이 움직인다!!! 분명히 움직였어!!!
게슴츠레 눈을 뜨니 천장에 박힌 형광등이 눈부시다.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고, 회복실이라 쓰인 문구가 저 멀리 덜렁거린다. 신음소리도 들린다.
남자 어른이 저런 신음을 내며 아파하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그리고 보니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아프다며 아우성이다.
“환자분! 왜 그러세요! 그렇게 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러지 마세요!”
바로 옆 침대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금방 수술실에서 나온 환자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꾸만 몸을 뒤틀고 있나 보다. 괴상한 신음과 함께.
나도 아프다. 그런데 신경도 안 쓴다. 나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닐까. 아수라장이다. 겨우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니 정렬로 놓인 침대 위에 환자들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링거를 꽂은 채 아프다고 웅웅거린다. 그 가운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하얀 의료진들이 보인다. 이곳은 지옥이 아닐까? 커다란 방은 온통 하얀색과 푸른색이 있을 뿐, 그 어떤 색깔도 용납될 수 없는 듯하다.
‘아! 이런 게 지옥이구나.’
수술 전 환자 대기실에서는 싸늘한 침묵이 파랗게 놓여 있었다. 하얗고 파란색만 허용되는 커다란 방에 빼곡히 놓인 침대들 그리고 그 위에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 파랗게 질린 고깃덩어리. 곧 마취가 시작되면 어느 부위를 칼질당할지 아는 영혼이 있는 고깃덩어리. 들키지 않게 날숨만 겨우 쉬고 있는 겁에 질린 고깃덩어리.
의료진은 각각 환자의 이름과 수술부위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생년월일, 말씀하세요. 성함은요? 어디를 수술하시죠?”
그렇지. 오래전 뉴스에서 오른 다리를 수술하러 들어갔는데 왼쪽을 수술하고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목걸이나 반지, 속옷 뭐 몸에 걸치신 거 없으시죠?”
그렇다. 지금 나를 나라고 표시할 수 있는 것은 손목에 채워진 이름과 번호가 적힌 남루한 종이 팔찌 하나. 그게 전부이다. 결국 이 보잘것없는 몸뚱이 하나를 위해, 이렇게 누워있는 그저 그런 영혼을 가진 고깃덩어리를 위해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반짝이는 것들을 샀단 말인가. 이 아무것도 아닌 고깃덩어리를 치장하기 위해? 마치 이곳은 얼마 전 드라마에서 보았던 실험실의 쥐같은 모습들이다. 그래도 품격을 가진 인간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려 침착하게 기다린다.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여 순하디 순한 모습으로.
하지만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깨어나면서 인간은 품위를 잃어 간다.
그러는 사이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손등 엄지 손가락 밑의 혹을 처음 발견한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의 손등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혹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언제 이렇게 커졌지?’
무심히 지내다가 어느 날부터 불편하고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는데 일반 정형외과가 아닌 ‘암병원 종양 정형외과’로 가라고 한다.
MRI를 찍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대부분 심각한 이야기는 없고, 약물치료를 하거나 시술 정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저절로 없어지기도 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손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오른손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중년 여성은 왼쪽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설마 내가 저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예외이고 싶다.
하지만 손전문 정형외과 교수님은 수술을 하자고 했다. 악성은 아닌 것 같은데 꼭! 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종양이 뼈와 신경, 인대를 침범하고 공격성이 강한 놈이라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얼떨결에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전 필수항목인 각종 검사예약도 했다.
2004년.
건강검진이 귀찮게만 느껴지던 30대였다.
미루고 미루다 유방암 검사를 하러 갔다. 25살에 첫째를 28살에 둘째를 낳았다. 모유를 먹이지 않아 유방암 검사는 정기적으로 해야 했다. 유방 검사를 마치고 갑상선을 검사하던 의사가 중얼거린다.
“암 같은데요?”
“네?”
“갑상선암이요!
확실해요. 근데 걱정 마세요. 최소 10년은 살아요.”
그날 입었던 가죽 재킷과 거리의 표정, 2월 말의 스산한 바람 그리고 이상하게 노랗던 하늘까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쓴 입맛과 나의 느린 걸음까지.
다행히 종양은 0.8cm로 매우 작았고, 검사 결과 치료가 쉬운 순한? 암이었다.
수술을 하고 16년. 아직까지 정기 검진을 하고 매일 아침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것 외에는 불편한 것이 없다.
수술 뒤 엄마는 갑상선암을 발견한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부신(신장을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장기)에 4cm 종양이 생겨 수술을 하였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고 '갈색 세포종'이라는 신기한 이름의 혹이었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올라오자 딸아이의 경직된 얼굴이 보인다. 순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보호자는 한 명만 들아올 수 있고 퇴원할 때까지 나가지 못한다.
오른손엔 붕대를 칭칭 감고 왼손엔 링거가 주렁주렁 꽂혀있다. 서로 병원에 들어가겠다고 실랑이를 하다 낙점된 둘째가(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다) 양손을 못쓰는 엄마를 변기에 앉혀놓고 머리를 감긴다. 밥도 떠 먹여주고 이빨도 닦아주고 세수를 시키고, 로션도 발라준다. 이참에 엄마를 놀려 먹기라도 하려는 듯 세수를 시킬 때는 볼을 꼬집기도 하고 로션을 발라 주며 찰싹거린다.
눈을 흘기며 웃고 있는 딸에게 말한다
"아이크림도 발라줘야지!”
나는야 까다로운 고깃덩어리.
입원하고 퇴원을 할 때까지 집요하게 받은 질문이 있다.
“방귀는 끼셨나요?”
“마지막 대변은 언제 보셨죠?”
“소변은 보셨나요?”
이런 사소해 보이는 너저분한 것들이 잘 해결되어야 비로소 품위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야 그저 그런 영혼이 있는 고깃덩어리.
*메인 사진- 2017,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데미안 허스트(1965~)의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전'에 전시된 작품.
*photo by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