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월 5일 - 이스탄불로 가는 길

by 원광우

거리에서는 낙엽들이 이리저리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바람은 그걸 가만 두지 않았다. 때로는 높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파고드는 골바람으로, 때론 양쪽에서 부딪치는 맞바람으로, 또 때로는 나선형으로 빙빙 도는 돌개바람이 되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그들을 덮쳤다. 낙엽들은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시선을 집안으로 돌렸다. 거실 한 편에 커다란 캐리어 두 개가 놓여있었다. 누군가 잠시 맡겨놓은 물건 같았다. 영숙이 이따금씩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그걸 알면서도 난 말수를 아꼈다. 아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출국의 두려움도 이별의 아픔도 혈육의 정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만 같았다.

“학교 다녀올게요.”

혜경의 목소리가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거기엔 많은 게 사라져있었다. 녀석의 모습이 사라져있었고 감정이 사라져있었고 인사말 속에 내가 사라져있었다. 출국은 딸아이에게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영숙이 사라진 모든 것을 복원시키려 혜경을 불러 세웠다.

“얘, 아빠 오늘 출국하시는데 인사도 안하고 그냥 가?”

“조심해 다녀오세요.”

혜경은 마지못해 인사말만 살짝 바꾸어 영숙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시늉을 했다. 가뜩이나 볼멘소리는 여전했다. 그녀는 벌써 여러 날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시해오고 있었다. 누구보다 그 이유를 잘 아는 나였다.

W사 입사를 앞둔 지난 9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맺은 소중한 인연을 그때까지 끊지 못해 동네의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를 혜경이 갑자기 붙들고 늘어졌다.

“아빠, 오늘 나도 도서관 가려는데 점심 사주면 안 돼?”

평소 발달한 사회성에 비해 애교지수만큼은 비대칭적으로 과락을 면치 못하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새삼스럽다 못해 놀랄 지경이었다.

“웬일이야, 밖에서 아빠를 만나자고 하다니? 그래 뭘 먹고 싶어?”

“도서관 바로 앞 큰길가에 왜 순대국밥 집 있잖아? 친구들이 그러는데 거기 국밥이 맛있대.”

나도 잘 아는 집이었다. 어쩌다 가끔 찾을 때마다 발 디딜 틈이 없어 주인은 남는 게 없고 손님은 먹을 게 없다는 요즘 식당을 두고 항간에 떠도는 유행어를 믿지 못하게 하던 바로 그 집.

“그럼 열두 시 정각에 도서관 일층에서 만나는 게 어때? 대신 후식으로 커피는 네가 사야 돼. 아빠 실직자라는 거 알지?”

고난도의 유머랍시고 실직자로 실직자가 아님을 묘사한 결과는 처참했다. 국어전공자 앞에서 공돌이가 함부로 비유를 구사하는 오만방자함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응징치고 혜경의 반응은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이 얼어붙은 듯 어색해지는 게 왠지 심상찮았다. 예감은 식사가 끝난 후 커피를 마실 때서야 현실로 나타났다.

“아빠, 이것 좀 봐줄래?”

혜경이 접혀진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시간여행전시회의 초대장이었다. 점점이 박힌 깨알들은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이래 보낸 지난 2년 반의 제 대학생활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상한건 그녀의 그림 속에 내 그림자가 진하게 스며들어있다는 점이었다. 난 덤으로 40여 년 전의 내 공간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이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기름밥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국어가 재미없다는데 난 공학이 재미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꾸고 싶다는데 나도 그때 방향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데 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휴학을 하겠다는데 나도 그때 휴학을 입에 달고 살다가 결국은 군 입대를 하고 말았다. 혜경과 내 사이가 부정할 수 없는 부녀관계임과 멘델의 유전법칙이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우린 신체적 유전자만 닮은 게 아니라 삶의 역사까지 닮아있었다. 다른 점은 오직 하나였다. 그녀가 부모인 내 면전에서 떳떳하게 제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난 포장마차를 전전하며 술잔에다 하소연을 퍼부어댔었다. 그 또한 우성과 열성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우열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녀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그녀의 결정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자각하는 현실과 내가 자각하는 현실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존재했다. 40년 전의 내가 자각한 현실과 지금의 내가 자각하는 현실 사이에도 차이는 분명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알바를 전전하는 민수, 재취업이 확정되긴 했지만 변동가능성을 키우는 터키라는 근무지, 우리 가정경제는 아직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는 중이었다. 그처럼 졸업과 임용고시 합격을 단 몇 개월이라도 당겨야할 판에 혜경은 그걸 미루자고 덤벼들었다. 단 1년도 아니고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을. 어디 언감생심 한방에 임용고시 합격을 꿈꾸느냐면서 멘델이 나의 유전자를 들먹인다면 그건 당분간 동네입시학원의 강사 자리로 양보할 수는 있었다. 어떡하든 혜경의 마음을 돌려놓고 봐야했다. 난 40년 전 스스로조차 설득시키지 못했던 논리를 다시 차용해 꺼내드는 실수를 저질렀다.

모든 사람들이 적성에 꼭 맞는 직업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다보면 익숙해져 적성처럼 굳어지는 일 또한 허다하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휴학할 게 아니라 졸업하고 취업한 후 시도해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렇게 적성이 확인되면 그때 그 방면으로 이직을 하는 게 실패를 줄이는 길이다.

지난 40년을 그렇게 후회하며 보내놓고도 난 똑같은 일을 강요했다. 시대도 대상도 달라졌지만 ‘라떼는 말이야’로 윽박지르기만 하는 꼰대 아닌 꼰대였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딸을 향해서. 나의 생체시계는 온통 오류투성이였다. 나의 지난 40년보다 혜경의 지난 2년 반을 더 길고 아깝게 여기고 있었다.

울먹이는 혜경의 입에서 흐느낌과 함께 넋두리가 새어나왔다. 아직 젊은데 좀 늦으면 어떠냐고, 왜 이해해주지 않느냐고. 이해란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변명에 불과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난 그녀를 혼자 남겨둔 채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왔다.


“그래, 다녀와라.”

다녀올 때까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할 것처럼 난 태연하게 인사했다. 얼굴이 사라진 상태에서 나눈 인사말에는 친근함마저 죄다 증발해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유독 큰 파장으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새벽에 잠을 자는 머리맡에 와서 알바를 간다며 떠나간 민수에 이어 두 번째 무대면 작별이었다. 어느새 넷에서 둘이 되었다. 둘마저 곧 쪼개져 곧 혼자가 되겠지만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질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근황을 알리다보면 내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테지.

‘아무래도 내게는 역마살이 끼어있나 보다. 그토록 출장이 잦더니 이번에는 아예 해외근무다. 임지는 터키. 오늘 그곳을 향해 출국이다. 그저 이것도 남들이 쉬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맘 편히 먹어본다. 마지막 직장생활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국에서의 삶도 한 번쯤 겪어볼만한 것이 아니겠느냐.’

사주명리에 역마살은 분명해보였다. 가족 전체의 거주지를 옮긴 게 벌써 일곱 번, 주말부부만도 오 년, 해외출장을 다닌 횟수는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살아온 세월을 고려한다손 쳐도 집을 떠난 날의 비율이 20퍼센트라면 장돌뱅이인생이라 한들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인생이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이인화(離人化) 현상을 겪는 건 일종의 면역반응인지도 모른다. 집을 떠나서도 그저 눈을 찔끔 감고 참다보면 또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던 것처럼 영혼도 육신을 떠났다 돌아오는 일이 잦았던 게지.

“언제 가려구요?”

공항리무진버스 시간을 염려하는 영숙의 목소리도 무미건조했다. 지금 출발하자는 뜻인지 아직 넉넉하다는 뜻인지 애매했다.

“5분만 있다가 출발하지.”

남은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데 난 5분을 부여했다. 그 사이 우리 둘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기류가 넘을 수 없는 벽을 형성했다.

“어디 여행 가시나 봐요.”

아파트의 주차장으로 막 접어들 무렵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준호였다. 오늘도 그는 1킬로미터 남짓한 산책트랙을 조깅으로 돌고 있었다. 우린 같은 듯 다른 달리미였다. 지구력을 추구하는 난 하천길을 주로 달렸고 스피드를 추구하는 그는 트랙을 돌았다. 그가 뛴 바퀴 수만큼 땀이 윗옷에서 나이테를 그렸다. 제법 오래 달린 모습이지만 호흡도 자세도 편안했다.

“아니, 해외에서 근무하게 되었어.”

막 지나쳐가려다 그가 급히 뜀박질을 멈추었다. 제자리걸음이 이어졌다.

“그래요? 어디요?”

그걸 시작으로 육하원칙에 입각한 질문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러느라 멈춰서기까지 했다. 전직이 기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그 앞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아파트에서 인사하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이웃이었기에 난 아주 성실하고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그는 덕담을 한 마디 던지며 다시 뛰어갔다.

“형님인생도 이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들어선 것 같네요. 난 언제 사점(死點)을 지나려나 몰라. 파이팅하세요.”

마라톤 경력이 적지 않으면서도 난 남들이 다 맛본다는 러너스 하이에 둔감했다. 그 때문인지 준호가 말한 지금의 내 러너스 하이가 오히려 힘들게 넘어서야 하는 사점으로 여겨졌다. 사점과 러너스 하이에 대한 정의마저 인간의 간사함 앞에서 달라져있었다.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십여 분 동안 영숙과 나 사이에는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그녀는 전방주시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운전에 집중했고 난 내면주시의무를 소홀하며 막연한 사색으로 산만했다. 우린 그렇게 서로 다른 이별방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항버스정류소에 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백도어를 열고 짐을 부리는데 영숙이 물었다.

“나도 내릴까요?”

내리겠다는 뜻보다 내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실려 있었다. 아니 그건 나만의 상상일 뿐 그 앞에 붙어있는 주차금지 표지판이 그녀를 압박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건너편 도로에 주차한 채 붉은 경광등을 뱅글뱅글 돌리는 경찰백차 때문이거나.

“아냐, 괜찮아.”

캐리어를 다 내릴 때까지 그녀의 전방주시의무는 계속되었다. 멈춰선 순간에도 계기판의 주행거리기록계 수치가 계속 올라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가 트레드밀을 타고 있는 것일까? 세 번째 마지막 작별인사마저 난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한 채 나누었다.

“갔다 올게.”

“예.”

‘조심하세요.’도 아니고 ‘건강하세요.’도 아닌 냉담한 대꾸였다. 그녀는 돌아보는 수고조차 아꼈다. 그건 멀리 떠나는 사람을 향한 인사가 아니라 민망한 마주침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의 알림을 미리 공지하는 헛기침 같은 것이었다. 백도어를 닫았다. 머뭇거리듯 잠시 서있던 차는 배기관의 소음과 함께 떠나갔다. 감정에 인색한 우리가 준비했던 이별행사는 그것으로 막을 내렸다. 현실불감증은 더욱 깊어졌다.

버스를 타자마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탈출한 내가 갇힌 나를 바라보는 이질감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모든 걸 비워낸 무아지경이면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비우고픈 머리는 비우려하자 비우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차라리 무언가로 채워 몰아지경에 빠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 웹 서핑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입력한 키워드는 휴학이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을 가장 먼저 떠올림으로써 내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 요즘 대학생들 휴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 첫 번째로 마주친 글의 제목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정상이던 나는 그 진단서로 사회부적응자가 되었다. 졸업예정자가 졸업자보다 취업면접에서 우선순위, 취업 스펙을 쌓기에 대학 4년으로 부족, 자기개발강의 수강필요, 공인영어성적과 공인자격증 필수와 같은 문구들이 한두 해 휴학을 당연시하는 이유로 등장했다. 대학교육기간은 4년이 아니라 4+α년이 된지 이미 오래였다. 난 혜경의 자기개발을 막은 파렴치한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내 욕심에 녀석의 인생행로에 커다란 장애물을 놓았다는 자책이 일었다. 견디다 못해 문자를 보냈다.

‘아빠 갔다 올게. 엄마랑 다투지 말고 생활 잘해. 한 번씩 시간 나면 서로 통화하자.’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편해진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대학생활 뜻있게 보내고.’라는 말을 마지막에 썼다가 지웠다. 대학생활의 의미를 축소시킨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였다. 열려진 대화창 위로 지난 문자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휴학문제로 다투던 날의 울분, 학기성적우수자로 장학금을 받던 날의 들뜸, 함께 식사하자며 귀가를 독촉하던 날의 기다림이 화면 구석구석을 알알이 채우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몇 분이 지나도록 혜경은 문자를 읽지 않고 있었다. 강의 중인데 나 좋자고 또 괜한 짓을 한 것일까?

버스는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과 수화물수속까지 끝냈지만 탑승시간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시간은 잠시도 한눈을 파는 법이 없거늘 기다리는 일은 늘 그렇게 지루했다. 면세점에서라면 절대 빠뜨리지 않는 술 구경조차 오늘은 시들했다. 탑승게이트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무료함을 달래주려는 듯 주머니 속에서 전화기가 소리 아닌 몸짓으로 포효했다. 황 대표였다.

“아니 꼭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겠소? 공항이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악의 없는 다그침으로 바뀌었다.

“괜히 회의 중에 방해를 할까봐서요. 지금 탑승게이트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젠 내 목줄을 쥔 사람이었다. 진심여부와 상관없이 예의를 갖추어야 할 상대였다.

“잘 해주리라 믿소. 내가 전화한 목적은 다른 게 아니라 그곳 회사 창고 어디에 내 골프채가 있을 거요. 그걸 박 전무 것인 양 마음대로 쓰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요. 얼마 전에 필드에서 강 전무 기를 팍 꺾어놓았다는 말은 들었소만 나를 상대하려면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해요. 연말에 한 번 갈 테니 그때 거기서 진검승부를 한 번 펼쳐봅시다. 향수병 주의하구요.”

저 앞 기둥에서 황 대표 사진이 포함된 소매치기단 주의 전단지를 누군가 떼어내는 중이었다. 면세점의 향수병(香水甁)에서 향수(香水)가 새어나오듯 그가 말한 향수병(鄕愁病)에서 향수(鄕愁)가 새어나왔다. 비로소 출장길에 오른 나의 모습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페이스북 계정도 출국의 분위기를 모락모락 피워댔다. 내 소식을 접한 많은 친구들이 댓글로 나를 격려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를 찾아오는 나를 반겨 맞이하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S사 근무시절 함께 일했던 남 과장과 조 대리였다. 퇴사 후 첫 만남이니 근 1년만이었다.

물질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온도와 압력이라면 기억의 변화를 주도하는 건 시간이다. 1년이 안 되는 시간은 30년 동안 축적되었던 S사에 대한 기억을 상당 부분 변화시켜놓았다. 망각으로 사라졌다기보다는 다른 것에 의해 밀려나고 대체되었으니 변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그런가 하면 S사 자체는 말 그대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전무님 나가시고 난 후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개발팀이 생산팀으로 흡수된 건 아시죠? 몇 달 뒤에 연구팀도 아예 없어져버렸어요. 연구비 유용사례가 정부기관에 적발되었거든요. 그 때문에 수행하고 있던 모든 국책과제들이 반납되었고 직원들은 할 일이 없어져버렸어요. 그 과정에 대부분 이직하거나 퇴사를 했구요. 연구소란 명칭도 아예 사라졌어요. 그냥 우린 생산본부에 속한 설계팀일 뿐이에요.”

내가 속했던 조직이 표류하고 있었다. 남 과장의 말을 들으면서 난 생존본능으로 난파 직전에 약삭빠르게 빠져나온 쥐를 떠올렸다. 스스로 하선한 것이 아니라 떠밀려 하선했다 하더라도 그의 눈에는 내가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혹시 김명수 부사장님 소식은 알고계세요?”

내 안테나는 유독 그에 대해서만은 젬병이었다. 좋은 소문은 걸어가고 나쁜 소문은 날아간다는데 도달한 게 없으니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으려니 할 뿐이었다. 그 안테나가 조 대리의 말에 갑자기 반응하기 시작했다. 둘의 사이를 모르지 않는 그였기에 왠지 때 아닌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에 젖어볼 기회를 제공해줄 것만 같았다.

“글쎄…….”

“지난 8월에 평택공장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리곤 공장이 매각되었죠. 덕분에 사장이 되었다던데 대신 S사와는 완전히 연이 끊어지고 말았어요. 톰도 제리도 엘 클라시코도 이젠 다 옛말이 되었네요. 하하하.”

한때 내 것이라 생각했던 그 길을 그가 간 셈이었다. 기대와 달리 희열보다는 허탈함이 가슴을 가득 채워왔다.

“그건 그렇고 너네들은 어디 출장 가는 거야?”

겨우 화제가 대상을 제대로 찾아갈 무렵 남 과장의 입에서 또 회사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최근 회사의 매출이 급감했대요. 적자가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라고도 하구요. 방계회사들을 계속 정리해나가는 것만 봐도 뜬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곧 대규모 감원을 행할 거란 소식도 횡행하구요. 이번 출장도 그런 일련의 일들과 무관치 않아요. 러시아 공장 매각을 위해 현장실사 때문에 가는 거니까요.”

“러시아 공장은 해외공장 중에서 상황이 꽤 괜찮았잖아 왜?”

“그랬죠. 그런데 이번에 H사가 러시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우리도 납품처가 없어져버렸어요. 거기서 생산한 물건을 타국으로 수출하거나 국내로 들여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다른 방법이 없게 된 거죠. 우리도 지금 이직할 곳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생쥐가 된 나를 걱정했지만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나를 생쥐가 아니라 난파하도록 배에 구멍을 내고 달아난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의 전개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때의 동지였던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내가 답답하기만 했다.

비행시간이 열두 시간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터키에서 머물기로 한 최소한의 기간은 2년이었다. 이코노미석에서 보내는 열두 시간으로 2년의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아득했다. 조금이나마 체감시간을 줄이고 싶어 다른 방식으로 계량을 시도했다. S사에서 연구소로 처음 발령받아 수원에서 혼자 살아야했던 기간 2년, 기껏 집을 옮겼더니 이번에는 대구 근무가 결정되어 또 혼자 살아야했던 기간 1년의 두 배, S사를 퇴직하면서부터 지금까지 10개월의 약 2.5배. 그다지 길어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 기간을 잘라 지금 이후로 붙여놓았더니 상상할 수 없는 길이로 늘어나버린다는 점이었다. 과거는 늘 ‘벌써’지만 미래는 항상 ‘아직’이었다.

맞서기보다 도망가기로 했다. 도망가는 속도를 증진시키기 위해 도핑도 불사했다. 스튜어디스는 부작용에 대한 고지도 잊은 채 도망자가 내미는 잔에 붉은 약물을 겹쳐 따라주었다. 섬망 증상이 생기면서 지남력(指南力)이 흐릿해져갔다. 주변에 앉은 단체관광객들의 설렘이 상상의 근육을 더욱 빠르게 키웠다. 이스탄불로 향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오사카로 행선지를 바꾸면서 날짜변경선을 과거방향으로 250회는 거뜬히 넘어갔다. 영숙과 혜경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나에게 오사카는 서울보다 더 익숙한 곳이었다. 비용이나 편리함 같은 여행의 모든 요소를 감안할 때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에 가이드 역할은 나여야 했다. 이견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견은 생겨있었다. 첫날부터 혜경은 나를 가이드로 인정할 뜻이 전혀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아내도 딸의 편에 합류하며 나를 싱거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유명한 관광지를 들이밀면 두 사람은 평범한 골목길을 찾아갔다.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가리키면 아기자기한 소품샵들을 전전했다. 알려진 식당주소를 링크하면 길거리음식 맛집으로 응수했다. 전철과 버스 정보를 흘리면 도보경로를 알려왔다. 가까운 마트나 편의점 대신 먼 전통시장을 찾아다녔다. 나의 지식보다 구글지도의 지식을 더 신뢰하고 유용하게 사용했다. 혜경은 연일 싱글벙글하며 영숙의 손을 잡고 오사카 전역을 누비고 다녔지만 난 매일 밤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야 했다. 지치고 섭섭하고 억울했지만 그 나름의 재미에 빠져든 것 또한 틀림없었다. 특히 입이 즐거웠다. 여행이란 원 안에서 관광보다 식도락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만큼 제 방식의 여행을 선호하는 혜경이었다.

여행하고 싶은 나라로 치면 터키도 손꼽히는 나라였다. 세계 3대 요리 중 하나가 터키음식이었으니 맛집 탐방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터키여행. 그것도 근무 중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면 혜택이었다. 언젠가 그것도 계획해보리라. 그런 마음을 먹으며 폰을 꺼내 혹시 모르는 사이에 혜경에게서 문자가 왔었나 확인해보았다. 비행중이라 통신이 차단되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답이 없는 그녀가 야속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땅, 터키는 저녁이 깊어 밤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입국장에서는 카드섹션이 펼쳐졌다. 환영의 의미가 다분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피켓들은 하나같이 이산가족을 찾으려는 신상명세였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이 나라에서도 가족들을 흩어지게 한 아픈 역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나 역시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지구 저쪽 편에 가족을 버려두고 온 대가로 치러야하는 일이었다. 내가 찾는 사람은 나를 찾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찾지 않으면 그는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영숙을 처음 만난 007미팅처럼.

그날 마담뚜는 나에게 검정색 손가방과 파란색 장우산,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주문했다. 공원벤치에서 그 차림으로 앉아 있으면 여성파트너가 찾아갈 것이라며. 우리의 만남 성사는 그녀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그녀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난 영문도 모른 체 바람을 맞도록 설계된 미팅이었다. 그런 불평등 미팅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나는 특유의 짱구를 굴림으로써 주객을 전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007의 추적대상이 아닌 007이 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공원벤치에 난 소지품들만 올려놓았다. 벤치 팔걸이에 장우산을 걸쳐두었고 좌석 위에는 손가방을 놓아두었으며 그 위에 도스토옙스키를 올려놓았다. 앉아있어야 할 나는 거기서 좀 떨어진 건너편에서 서성이며 주변의 정황을 탐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시간이 되자 떡밥에 관심을 가진 여대생이 한 명 나타났다. 소지품만 놓인 채 사라진 상대를 두고 당혹스러워 하는 그녀의 정체는 나의 줌렌즈에 정확히 포착되었다. 긴 생머리에 서글서글한 눈매, 적당한 키에 캐주얼한 옷차림. 밉지 않았다.

“오늘 미팅하기로 하신 분이세요?”

방어체계를 교란시키기 위해 후방 공격을 감행했다. 나의 작전은 계획과 실행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상대를 찾던 자신의 행동이 들켜버렸음을 인지한 그녀는 순순히 파트너 선택권리를 반납했다. 미팅은 그녀에게 원하는 남자를 준 게 아니라 나에게 원하는 여자를 주었다. 그날을 계기로 난 삶의 길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고 내가 하는 선택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박윤기’도 아니고 ‘Yunki Park’도 아닌 ‘Kiyun Park’이란 피켓을 발견했다. 콧날이 오뚝하고 새파란 안구를 가진 서른 안팎의 젊은이였다. 나의 선택을 믿으며 그의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피켓과 내 가슴 사이를 몇 차례 반복해 가리켰다.

“이츠 미(It's me). 박윤기.”

“법인장님이세요? 한국말로 하셔도 돼요. 전 이스마일입니다.”

예상치 못한 한국어에 거꾸로 쓴 이름을 수정하려는 시도는 묻혔다. 대신 한결 친근감이 찾아왔다. 그가 피켓을 접고는 캐리어 하나를 낚아채듯 끌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 차가 법인장님께서 사용하실 차예요.”

검정색 투싼의 백도어를 열고 캐리어를 차례로 그곳에 밀어 넣으며 그가 말했다. 비교적 정확한 발음은 그의 오랜 한국생활을 짐작하게 했다. 그가 한국에서 느꼈을 향수가 일순간에 나에게로 전염되어왔다.

“약 100키로 정도를 이동해야 해요. 밤늦은 시간에도 여기는 차가 막히니 아마 두 시간 가까이 걸릴 것 같은데 피곤하시면 그냥 주무세요.”

대답 대신 머리를 시트에 기댔다. 차창으로 지나는 어둠 속 낯선 풍경들이 딱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왔다.

“참, 배 많이 고프지 않으세요? 여기가 고속도로라 특별히 식당이 없어요. 휴게소에 들를 테니 그곳에서라도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가시죠.”

때로는 배려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배려로 다가올 수 있건만 그는 아무 대답이 없는 나를 향해 자꾸 무언가를 배려하고 싶어 했다.

“그냥 갑시다. 별 생각이 없어요.”

“부장님께서 식사를 꼭 챙겨드리라고 지시하셨는데…….”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꾸중이라도 들을 것처럼 말하는 그 앞에서, 배려하지 않는 배려를 아쉬워했던 나와 거절하지 않는 거절을 하지 못한 내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숙소는 거실과 두 개의 방, 욕실이 따로 분리된 구조로 열서너 평 정도의 아파트였다. 전자제품과 가구들은 물론 주방용품도 잘 갖추어져있었고 세면도구며 일반 소모품까지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있었다. 이른바 풀 옵션 임대아파트였다. 광주숙소에서처럼 소매치기단과의 일전을 불사할 결의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이스마일은 귀찮을 정도로 구석구석 쫓아다니며 나를 살림맹 취급했다.

“준비한다고 했는데 혹시 빠진 게 있거나 추가로 필요한 게 있으면 메모지에 적어 책상 위에 올려놓으세요. 아주머니 한 분이 매일 와서 청소를 하실 건데 그때마다 법인장님 원하시는 걸 사다주실 거예요.”

아마도 그의 걱정은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았다. 여태 살림맹은 물론 정리맹에 요리맹까지 3대 통합타이틀을 보유해왔으니 있는 것들을 사용하는 건 고사하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어떻게 알까? 그렇다고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겠습니다.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네요.”

“참, 이쪽으로 와보세요.”

베란다에 서서 그가 나를 불렀다. 도움을 줄 게 없으면 순한 양이 되어 의무감이라도 해소시켜 주어야했다. 그에게 다가갔다.

“저쪽으로 난 길이 산책로예요. 한 바퀴가 약 500미터죠. 아침에 조깅하기 좋아요. 이웃들도 만날 수 있고요.”

무엇보다 반가운 소리였다. 곧바로 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뛰어야하는 거리를 계산했다. 하루 10킬로미터 곱하기 최소 주재기간 2년. 거의 이곳에서 서울까지의 거리였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우리 집을 향해 한 걸음씩 옮겨보리라 다짐했다.

“그럼 저는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올게요. 편히 주무세요.”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혼자 남으면서 마침내 길고 긴 오늘의 여행이 끝났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난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내 시작은 혜경의 새로운 시작에 밀려 후순위로 뒤쳐졌다.

‘아빠, 미안. 나 오늘 휴학했어. 아빠 고생하는 거 잘 알지만 아무래도 나중에 내가 많이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오래 고민한 거야, 그러니 이해해 줘.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 정말 열심히 해볼게. 학원비랑 용돈도 내가 마련할 수 있도록 알바도 부지런히 할 거야. 그리고 아빠 많이 사랑해.’

끝내 내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결정을 내린 녀석이 이상하게도 섭섭하지 않았다. 나의 후회스런 결정에 면죄부를 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어차피 결정한 것이라면 앞만 보고 잘 해보렴. 아빠는 네 판단을 믿으마. 참, 그러고 오면서 생각난 건데 내년 여름에 엄마랑 이곳으로 한번 와라. 여긴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음식으로도 유명한 나라 아니니? 그때를 위해서 아빠가 맛있는 맛집 많이 알아둘게. 숙소도 방이 두 개나 되는 독채라 함께 머무르기에도 안성맞춤이야.’

난 우리들의 화해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숙소의 사진을 몇 장 첨부했다. 영숙에게도 몇 자 적는 걸 잊지 않았다.

‘여보, 나 잘 도착했어. 살다보면 또 금방 함께 모여 살 수 있을 테지. 그때까지 열심히 생활해볼게. 아무 걱정 마.’

주변 자미에서 아잔소리가 들려왔다. 평화의 소리요 희망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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