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티

[단편] Confetti

by 원망




하늘 가득 비눗방울이 떠올랐다. 햇빛이 방울 표면에 닿아 순식간에 수많은 무지개 색을 만들었다. 방울들은 퐁퐁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때, 격렬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켁켁! 케켁!"


일곱 살 건우는 현관 바닥의 빨간 세숫대야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간유리 현관 너머에서 빛이 부서져 들어왔다. 세숫대야 안에는 물과 함께 나뭇가지, 풀들이 휘저어져 있었고, 건우는 그것을 깊은 바다의 해초로 상상했다. 물고기들이 노닐던 상상 속의 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대문이 쾅쾅쾅 울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현관 밖, 할머니와 엄마가 기침을 멈추지 않는 열한 살 누나를 부축하고 들어왔다. 그들이 급히 화장실로 향하자 건우도 따라갔다. 누나는 변기에 엎드려 등을 두드리는 엄마 앞에서 괴로워하며 토했다.


“누나, 왜 그래?” 건우가 할머니를 보며 물었다.


할머니는 누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건우에게 말했다. "아이고, 비누를 먹었대."


비누. 건우는 세숫대야 옆에 놓인 하얀 비누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비누를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입에 넣고 씹어 먹는 상상을 했다. 그 순간에도 누나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시 후, 안방 아랫목에 누운 누나는 흑백 TV를 보고 있었다. 건우가 비누를 들고 다가가 내밀었다.


“누나, 이거 먹어봐.”


누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휴, 바보야. 이 비누를 먹은 게 아니야.”


“비누를 먹어서 아픈 게 아니야?”


“이 비누 말고, 부엌에서 쓰는 거. ‘트리오’ 말이야.”


건우는 싱크대 한쪽에 놓인 파란 플라스틱 통을 떠올렸다.


“트리오? 그걸 왜 먹었어?”


“그걸 물에 타서 빨대로 불면 비눗방울이 만들어져.”


건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트리오 물에 빨대를 꽂아 불어 올린 비눗방울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그 표면에 무지개가 번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오… 무지개!”


“어? 그건 진짜 무지개가 아니야. 무지개는 비가 온 다음에 보이는 거야.”


건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알아 나도! 나도 봤어.”




다음날 아침, 부모님과 누나가 나간 뒤 할머니는 노인정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건우는 혼자 남았다. 세숫대야에 나뭇가지를 넣고 놀다가, 슬리퍼를 보리차 주전자에 넣었다가, 전기밥솥 밥풀을 부엌 벽에 바르고 놀다가. 그의 시선이 문득 트리오에 닿았다.


반지하 부엌. 건우는 새 트리오 통의 뚜껑을 열고 ‘퐁’하고 눌러봤다. 작은 거품이 올라왔다. 신이 나서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고 트리오를 쏟아붓고 휘저었지만, 기대했던 맑은 비눗방울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통을 마구 짜댔지만, 더 이상 미끄러운 액체는 나오지 않았다. 작은 거품만 푹푹 소리를 냈다.


건우는 부엌을 두리번거렸다. 스토브 옆 싱크대 위, 하얀 타일 위에는 큰 접시가 놓여 있었다. 접시 위에는 빨갛게 익은 아주 큰 꽃게가 있었고, 양념이 뿌려져 있었다.


“우와! 게?”


건우는 게를 톡톡 쳐보고, 집게발을 손끝에 껴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새 트리오 통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자 통은 빵빵했다. 건우는 트리오를 거꾸로 집어 들고 꽃게 등 위에 조금 뿌렸다. 손끝으로 비벼보니 미끌거렸다. 조금 더 뿌렸다.


“건우야!” 할머니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렸다.


건우는 놀라 동작을 멈추고 트리오를 황급히 제자리에 놓고 부엌을 벗어났다.




저녁 시간. 자개 무늬 밥상에는 밥과 나물, 그리고 가운데 꽃게찜이 있었다. 건우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우와 맛있겠다.”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건우를 돌아보며 농담했다.


“최건우, 너 혹시 여기다가도 트리오 뿌린 거 아니지? 그거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조심해.”


건우는 몹시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외쳤다.


“아냐!”


그의 표정은 우물쭈물했고,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한 듯했다.


이미 식구들은 게 다리를 뜯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할머니가 집게다리를 뜯어 건우의 밥 위에 얹어주며 씩씩하게 먹으라고 했다. 건우는 숟가락을 들고 밥과 게살, 그리고 식구들의 입으로 마구 들어가는 게살을 번갈아 바라봤다.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래… 같이…. 죽자!


건우는 눈물을 꾹 참고 입을 크게 벌려 밥과 게살을 넣고 씹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것들을 마구 뜯어먹기 시작했다.


“야야, 천천히 먹어 체해!” 엄마가 말했다.


건우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꿀꺽 삼켰다.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밤이 깊었다. 마른하늘에 번갯불이 번쩍이더니, 곧이어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할머니 방, 불이 꺼진 채 할머니와 누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밖에선 빗소리와 번갯불이 간간이 보였지만, 건우는 잠들 수 없었다.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너, 그거 잘못 먹으면 죽어.


건우는 소리를 죽이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이불 위로 두 손을 깍지 끼고 모았다.


하느님… 하느님이 있으면, 제발 우리 가족 좀 살려주세요. 이번 소원만 들어주면 정말 말썽도 안 피우고 엄청 엄청 착한 아이가 될게요.




다음날 아침.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다. 아주 화창하고 맑은 햇살이 창문을 비췄다.


건우가 눈을 뜨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듯 두 손을 펴서 움직여봤다. 옆의 할머니와 누나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건우는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


“건우야?”


건우는 잠에서 깬 할머니의 목소리에 놀랐다.


“어? 하… 할머니? 누나는?”


“누나야 진작에 학교 갔지. 아이고, 늦잠 자더니 꿈자리가 안 좋았나 보네. 엄마 아빠는 다 일하러 가셨고. 얼른 밖에 나와 봐. 어제 비가 그렇게 오더니 날이 엄청 좋아.”


와…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 진짜 착한 아이 될게요.


건우는 할머니를 향해 달려가 안았다.


“할머니! 내가 어깨 주물러 줄까?”


“아이고, 내 새끼. 웬일이래.”


할머니는 요 앞에 마실을 다녀오겠다며 대문을 나섰다. 건우는 눈이 촉촉한 표정으로 웃으며 “응, 할머니. 걱정 마”라고 대답했다.


며칠 뒤. 부모님이 출근하고 누나가 등교한 뒤, 엄마는 약국으로 출근하기 전 건우에게 당부했다.


“최건우, 엄마 간다. 오늘은 말썽 피우면 안 된다.”


건우는 뾰로통하게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그날 낮, 건우는 거실에서 커다란 달력 종이 뒷면에 말을 그리고 그 위에 무지개를 그렸다.


따르르르릉


건우의 무료한 시간 속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가 약국 조제실에서 약종이가 부족한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수화기를 든 것은 건우였다.


“건우니?”


“엄마?”


엄마는 건우에게 안방 TV 아래 서랍에 있는 약종이를 약국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할 수 있어? 너 장난치면 안 돼! 딴짓하면 안 되구.” 엄마는 걱정했다.


“걱정 마. 내가 엄청 빨리 가져갈게!”


건우는 안방 서랍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든 약종이를 발견했다.


"감사해요. 제가 드디어 착한 아이가 될 수 있겠어요!"




건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검은 봉투를 들고 집 앞 골목을 돌아 시장 입구로 향했다. 그는 시장 입구의 문방구 로봇도, 문방구 아줌마의 부름도 무시하고 달렸다.


시장 골목. 건우는 닭집 앞을 지났다. 아줌마가 살아있는 닭의 목을 비틀고 칼을 꽂아 통에 던지는 광경을 끔찍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 그렇게 다섯 마리가 잡혔는데도 그는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렸다. 생선가게 앞을 지날 때, 그는 빨간 다라리 가득 꼬물거리는 미꾸라지 통에 손을 넣어봤다. 미꾸라지들이 꼬리 치며 물을 튀겼다. 그는 봉투에 튄 물을 닦다가 봉투를 열었다. 맨 위 약종이 서너 장이 살짝 젖어 있었다. 젖은 종이를 꾸겨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달렸다.


약국 쪽 시장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건우는 숨을 헐떡이며 속도를 줄였다. 그때 과일가게 구석, 배수구 쪽에서 시선이 멈췄다.


“어!!... 무지개?”


비 온 뒤 바닥에 젖은 물에 가게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뒤섞이고, 햇빛을 받아 오색 빛이 흐르는 기름 물이 있었다. 건우는 옆에 봉투를 내려놓고 그 기름 물의 무지개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때 맞은편 자전거포 아저씨가 건우를 불렀다.


“건우, 거기서 뭐 하니?”


“무지개 봤어요. 비 온 다음에 보이는 무지개.”


자전거포 아저씨는 갸우뚱하며 웃었다.


“그래? 비 온 위에 무지개가 뜨긴 하지. 근데 어디 가는 길이야?”


“아! 심부름!”


건우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엄마가 있는 약국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시장 입구, 건우를 걱정하며 나와 기다리던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건우를 보자 반갑고 안심이 되어 활짝 웃었다. 건우도 엄마를 보자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신이 났다. 그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있는 힘껏 두 팔을 허공에 휘저었다.


“엄마아아아!!!!!”


건우의 눈앞에서 활짝 웃던 엄마의 표정이 아주 천천히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후두두두둑!!!!"


건우의 손끝에서 아주 큰 소리가 진동했다. 손가락에 걸려있던 검은 봉투가 건우의 힘찬 팔짓에 ‘후드득’ 끊어졌다.


화창하고 맑고 파란 하늘 가득히 수백 장, 아니 천 장이 넘는 하얀 약종이가 뿌려졌다.


약종이는 하늘을 가득 메우고 팔랑거리며 폭죽처럼, 꽃가루처럼, 컨페티처럼 반짝이며 하늘을 맴돌고 춤추다가, 어제 온 비로 젖은 검은 아스팔트에 ‘사악-사악’ 스며든다.


엄마도 건우도 동작을 멈추고, 하늘 위의 종이꽃가루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그 종이꽃 사이로 건우의 눈을 가리는 햇빛. 건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초점을 다시 맞추자, 저 멀리 비 갠 푸른 하늘에 진짜 무지개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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