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시] 그리고 만조

by 원망

[Epigraph]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밀물, 정끝별, 2000)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아도, '따로 만져도,'

우리는 그것을 각자의 향기와 빛깔로 기억했다.

펜으로, 붓으로, 카메라로, 소리로, 손끝으로

담아내는 그 행위가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을.

파도에 살갗이 긁혀도, 부두에 정박해 어루만지면

상처는 잠시 아물었다가 굳은살 위에 새 상처를 낳고

깎이는 만큼 쌓여 단단해질 텐데. '부드러울 텐데.'

서로 다른 파도에도 부두 곁에 마주하면 다행일 텐데.

“나를 영원히 안 볼 생각이에요?”

“너무 사랑해서 그래요!”

묻는 이도, 답하는 이도 이해 못 할 대화.

깎이는 상처와 쌓이는 굳은살처럼

이상하게도 메아리 같던 대화.

긁힌 배는 짠물로 상처를 매만지는데,

그 와중에 바다는 잠잠했다. '폭풍이 부는데.'

그래서 나는 굳은살의 휴식을 찾고

너는 전쟁의 포화 속 포옹을 그렸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냄새를 맡으며, 같은 부두에서 손을 잡고도

상처와 파도와 전쟁과 어루만짐을 '끌어 안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정박하면 곧 출항해야 할 불안한 부두에 살을 맞대고

휴식을, 잠을, 포화 속에서 만난 포옹같이 지내었다.

함께 있어도 부서질까봐,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면

무사하구나, 다행이란 말조차 조심스러워서.


어루만지면 끌어안고,

끌어안으면 어루만지는,

그 어긋난 항해 속에 우리는 함께했다.

우리가 큰 배였다면,

잠잠한 물결을 짓누르는 큰 배였다면,

어루만지지 못해도 큰 대양을 돌고

항구에 정박해 멀리서 바라봤다면 '함께였다면'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속삭일 수 있었을까.

우리가 작은 종이배였다면,

결코 시시하지 않은 종이배였다면,

굽이굽이 돌며 물이 스며들어

무사하지 않아도, '무사할 텐데,‘

저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속삭일 수 있었을까.

어느 물길 어느 항구에서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속삭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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