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서점에 가보면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가지고 세계를 한 바퀴 돈 선구자들의 책이 여럿 있습니다. 달랑 일본에 다녀오는 정도가 아니라 수십 나라 국경을 넘고 모터바이크를 화물선에 싣고 대륙을 건너 다시 한국까지 돌아오는, 복잡하고 험난한 긴 여정의 기록들이지요. 인터넷 카페에도 이타세(이륜차 타고 세계여행) 같은 아주 전문적이고 자세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사이트들이 많고 경험자들의 생생한 기록들도 많습니다.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게 직접 하기 시작하면 뭐든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게 그렇듯이.
모터바이크를 국제 카페리에 싣고 나가기 위해서는 '서류'작업이 필요합니다. 아주 복잡하거나 어렵지는 않더군요. 필요한 서류와 절차는 인터넷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카페리회사에서도 잘 알려줍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서류들이 있어야 배를 탈 수가 있으니까요. 여권과 국제 운전면허증의 유효기간을 확인하는 게 먼저. 그다음엔 모터바이크 등록서류인 '이륜자동차 등록 신고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국문 서류다 보니.. 이걸 영문 병기로 표기한 서류인 '이륜자동차 등록증서 Vehicle Registration Certificate'를 지자체(구청, 군청 등) 교통과에 가서 받아야 합니다. 이 서류들(여권, 국제면허, 등록서류들)의 복사본들이 여러 장 필요하지요. 제출할 곳이 많습니다. 우선 필요한 곳은 훼리 회사. 늦어도 십여 일 이전에 '전화로' 예약해야 합니다. 그럼 담당자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필요한 걸 다시 알려줍니다. 아, 물론 홈페이지에도 자세히 나와있구요. 가고 오는 날짜를 예약합니다. 차를 가지고 가게 되면 왕복, 그것도 같은 항구로 예약해야 합니다. 시모노세키로 입국해서 오사카에서 출국할 수 없다는 거지요. 세관이 얽혀있는 문제라 그렇다네요. 예약한 후에 일주일 전까지 메일로 서류들을 먼저 보냅니다. 담당 직원이 확인하려는 목적인 듯합니다. 늘 서류는 빠뜨리거나 잘못 작성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서류를 확인하면 담당 직원이 전화를 합니다. 서류는 이상 없네요. 당일 몇 시까지 어디로 오세요. 한 단계 넘어갑니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야 합니다. 그러니 실제 여행은 집에서 부산항까지 가는 게 시작이겠지요. 서울 한복판의 집에서 부산항까지 네이버 지도에 '자동차 전용 제외'로 경로를 찾으면 450km, 9시간 30분.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부산항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오후 세 시. 어차피 이틀이 걸릴 계산을 해야 합니다. 중간쯤인 문경에서 하루를 머물고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부산 친구 집에서 또 하루. 배를 타러 가는 데만 2박 3일이 걸리는군요. 부산역 뒤쪽으로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있습니다. 세 시까지 이 곳 카운터로 가서 예약을 확인하고 운임을 지급하면 됩니다. 운전자 2등석 운임 포함 37만 원. 왕복이니 많이 비싼건 아닙니다. 원래 운임이 9만 5천원 정도니까 모터바이크가 26만원 정도 더 드는 셈이지요. (승용차는 왕복 46만원입니다) 보딩패스를 받고 기다리면 잠시 후 선사 직원이 옵니다. 이때부터는 시키는 대로 하면 큰 문제없습니다. 건물 1층 왼편으로 차들이 들고 나는 출입구가 있는데 그 안쪽에 세관이 있습니다. 세관 사무실에 먼저 가서 '자동차 일시 수출입 신고서' 양식을 작성하고 준비한 서류들을 내면 '자동차 일시 수출입 면장'을 받습니다. 이건.. 다시 입국할 때 제출해야 됩니다. 분실하면 복잡해집니다. 수수료는 만원인가 듭니다. 이 절차를 마치면 출국서류 작업은 끝. 이제 통관합니다. 모터바이크에서 짐을 전부 꺼내서 검색과정을 거칩니다. 모터바이크는 따로 검사를 받고 항구 안쪽으로 직접 운전해서 옮깁니다. 짐검색을 끝내면 다시 모터바이크에 싣고 배 근처에 일단 주차해 놓습니다. 이 과정 동안 담당자가 계속 쫓아다니면서 할 일을 알려줍니다. 준비만 다 해가면 어려울 것 없더군요. 다시 터미널로 올라와서 승선시간까지 대기합니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출국 절차를 거치고 나서 직원에게 얘기하면 낮에 모터바이크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거기서 지시에 따라 배로 진입해서 정해진 곳까지 가져가면 직원들이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도록 배에 바이크를 결박시켜 줍니다. 이제 짐을 가지고 지정받은 객실로 올라가면 되는 거지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훼리'는 두 척의 배가 매일 왕복합니다. 한국의 부관훼리가 운영하는 '성희'호, 일본의 관부훼리가 운영하는 '하마유'호입니다. 날짜별로 달라지는 거지요. '하마유'는 시모노세키의 시화인 문주란을 뜻한다네요. 두 배 모두 오래된 편이고 비슷한 구조입니다. 현대중공업이 하마유호를 본떠서 성희호를 만든 거라네요. 저는 갈 때 올 때 모두 성희호를 타게 되었는데 2등실은 열 명 정도가 함께 쓰는, 옛날 군대 내무반처럼 생긴 구조입니다. 작지만 면세점도 있고 편의점과 자판기가 있지요. 식당도 있긴 한데 저녁때 타고 아침 일찍 내리니 굳이 이용할 기회는 없습니다. 일본식 목욕탕도 있어서 대부분 일본분들은 목욕을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더군요. 제가 성희호에 타던 날, 수학여행을 떠나는 부산의 여고생들이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수백 명의 여고생들이 가득한 배는 온통 하이톤의 웃음소리로 가득합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배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 배가 막 출발했지만 아직 전화는 되는지 아이들의 사투리가 계속 들립니다.
어, 지금 배 움직인다. 그래, 괘안타. 잘 가따오께. 걱정마라.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 선생님들도 제 눈에는 비슷해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 못지않게 저도 한참 들떠 있었을 겁니다. 몇 달을 준비하고 준비한 여행이 이제 제대로 시작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었으니까요.
이른 아침에 눈이 뜨였습니다. 아직 어둡지만 선실 창밖으로도 뭍에 가까이 왔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부터 조금씩 흩뿌리던 비구름은 배를 쫓아왔는지 저를 쫓아온 건지 시모노세키 하늘에도 두텁게 가득합니다. 짐을 대충 싸놓고 데크로 나오니 이미 여고생들과 보따리상들이 먼저 나와 있더군요. 배는 천천히 시모노세키 항으로 들어갑니다. 흐린 하늘에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들을 지나 시모노세키 항구 안쪽의 건물들이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하선 시간이 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 하선 신호가 내려지면 배에서 내리고 입국을 합니다. 이때 차를 가지고 탄 승객들은 조금 먼저 퇴실해서 배 아래편의 자신들의 차로 내려갑니다. 차례대로 지시에 따라 배에서 내리면 이제 입국절차. 제가 갔던 날은 모터바이크는 저 혼자여서 담당자와 일대일로 절차를 밟았지요. 역시 세관이 먼저입니다. 부산세관에서 받은 수입면장과 기타 서류들을 주면 역시 '자동차 일시 수출입 신고서'를 작성하고 자기들이 다 기입해서 도장을 찍어줍니다. 이것 역시 출국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수입도장, 수출도장이 다 찍혀야 되니까요. 비용은 수입 보증료 1만 엔. 돌려주지 않습니다. 이 절차에 자동차 검사하는 직원이 차를 검사합니다. 차에 ROK라고 쓰인 국적표기 스티커를 붙이고 영문으로 만든 번호판을 기존 번호판 위에 붙입니다. 스티커는 구청에서 받을 수 있고 번호판은 코팅한 종이 정도면 되는데 저는.. 조금 오버해서 방산시장에 가서 아크릴로 만들었지요. 아, 입국서류 중에 여행계획서란 것도 있어서 영문으로 꼼꼼하게 만들어 갔는데 검사하는 공무원은 차도 계획서도 대충 훑어보고 나서
와, 노토반도에 간다고? 거기는 어찌 알고? 거기 좋아.
아, 그래?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뭐 이런 얘기들을 좀 나누다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면 보험사 직원이 나타납니다. 며칠을 있든 1달 보험이 의무더군요. 5260엔. 저는 혹시나 해서 2달로. 보험료는 몇백엔 차이 안납니다. 그럼 번호판에 보험 스티커를 붙여주지요. 세관직원이 쪽문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입국절차를 하게 해 줍니다. 여권을 내고 받고. 그리고 다시 모터바이크에 오면, 직원이 조심해라. 잘 가라. 인사를 하고 이쪽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안내해 주지요. 오케이. 건물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시모노세키 항 입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