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동쪽 끝 바위 꼭대기에 서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이름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네요. 할머니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민박집 이름 역시 ‘Casa da Maria’ 구요. 몬산투 토박이라는 두 분은 여전히 돌산 아래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민박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포르투갈 시골에서 만난 노인분들은 대부분 말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몬산투의 이 할아버지는 거의 수다왕급이십니다. 영어가 유창한 건 아닌데도 짧은 단어 조합으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가장 말이 많으셨던 건.. 아침에 마리아 할머니와 함께 오셨을 때.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는 할머니 앞에서 자신이 낯선 나라에서 온 동양 소년(영감님께서 저를 ‘Boy’라고 부르셨기 때문에!)과 얼마나 영어로 대화를 잘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확연히 보이긴 했습니다만.
몬산투 Monsanto는 포르투갈 중부 가장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스페인 국경에서 2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지요. 오래된 길을 따라 띄엄띄엄 거친 밭과 작은 마을들이 있는 황량한 벌판에 갑자기 작은 돌산 하나가 불쑥 솟아 있습니다. 그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들 사이를 막아 만든 성이 있고, 그 성 아래 역시 바위들 사이에 혹은 바위 아래 위에 집을 만들고 사람들이 삽니다. 이 작은 마을이 몬산투지요. 로마가 이 지역에 들어오기 전에 지어졌을 거라는 성은 벌판 한복판의 고지라는 군사적인 이유로 생겼을 겁니다. 이후로 무어인들도 거쳐갔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왕조들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 돌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겠지요.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에서 바위를 끌어안고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그 특유의 풍광이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끌었고 적지 않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보아나 포르투에서의 교통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배낭여행객들보다는 차를 가지고 움직이는 여행자들이나 단체로 버스를 타고 와서 마을을 휙 둘러보고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돌산 꼭대기의 옛 성벽 위에 오르면 주변 사방이 모두 내려다 보입니다. 정말 퀭-하게 아무것도 없지요. 동쪽으로 보이는 벌판 너머가 스페인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가 포르투갈이고 어디부터가 스페인인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작은 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 아마 국경 비슷한 게 있긴 하겠지요. 성터에는 교회였던 건물도 있고 옛날 사람들의 작은 석관도 있습니다. 천 년 전에도 그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이 작은 돌산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아마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산의 바위가 집의 벽이고 담이며 축사의 경계가 되고 창고의 입구가 됩니다. 바위를 깨뜨리고 평평하게 만들어 집을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바위와 함께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으로 먼 데서 온 여행자를 쳐다봅니다. 그럼요. 사람이 사는 게 어디 정답이란 게 있겠습니까 남들처럼 사는 게 답은 아니지요.
마을에서 자주 보게 되는 천으로 만든 인형이 있습니다. 마라포나 Marafona 라고 불리는 인형인데 부부 금실과 출산의 상징이라네요. 몬산투를 상징하는 기념품이고 집집마다 한두 개씩 놓여있기도 합니다. 십자가 형태의 나무 프레임에 헝겊을 입혀 만드는데 얼굴에 눈코입이 없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걸 상징한다는데 그게 부부 금실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사순절 축일 축제에 결혼을 앞둔 처녀가 이 인형과 춤을 추고 침대에 놓아두었다가 결혼식 당일에 침대 아래에 인형을 넣는 게 전통이었다네요. 제가 이 인형에 관심을 보이자 민박집 할아버지께서 주차장으로 절 데려가셨는데.. 와. 사람 크기의 마라포나가 거기에 있더군요. 축제 때 쓰는 거라고 하십니다. 아, 이 정도 사이즈가 되니 같이 춤을 출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아주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나름 관광지라 숙소나 식당 등이 싸지 않습니다. 그래선지 민박집 할배는 넌 차가 있으니 아랫마을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라고 퉁명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식당들은 너무 비싸. 착한 ‘소년’은 그래서 차로 오분 정도 산을 내려가 Relva 마을 광장 선술집에서 동네 주정뱅이 영감들과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아, 다시 차를 가지고 올라와야 해서 술은 ‘조금만’ 마셨지요. 작년, 월드컵 기간이었기 때문에 선술집 TV에선 계속 축구가 나오고 있었고 그래도 월드컵 출전국 출신 여행자인 터라 괜히 동네 사람들 대화에 슬쩍 끼기도 하구요. 저녁 해질 무렵의 포르투갈 국경 근처 마을은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들의 그림자만 보일 뿐. 포르투갈의 속 모습은 사실 리스본이나 포르투에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마리아 할머니의 아침 식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양이 많았습니다. 몇 가지의 빵에 햄, 치즈. 특별함 가득한 오믈렛에 여러 가지 음료들. 새벽까지 마신 와인 덕에 속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곁에 붙어 앉아서 계속 이것도 저것도 하며 주시는 걸 마다할 수도 없어서 아침 치고는 과식하고 말았습니다. 할배는 근처의 다른 도시 Idanha-a-Velha에 꼭 들러보기를 추천하십니다. 아 예, 안 그래도 들러볼 생각이었어요. 오전의 빛 좋은 시간, ‘가장 포르투갈스러운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던 몬산투 골목을 이리저리 다시 한번 거닐어 봅니다. 이른 오전인데도 여행객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하더군요. 할배와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빠져나옵니다. 역시 불쑥 솟아오른 바위산이 멀리서도 보입니다. 저 집들의 벽과 지붕은 천 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으니 아마 천 년 후에도 비슷한 모양새로 남아있겠지요. 삼십 년도 못 버티는 우리나라 집들과는 애초에 다른 생각으로 지어졌을 테니.
이다냐 아 벨랴 Idanha-a-Velha 는 몬산투보다도 작은 마을입니다. 역시 로마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교회건물과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작은 옛 문화체험 공간이 있고 동네에 유일한 식당 겸 카페가 있습니다. 마을을 끼고 있는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 가면 역시 벌판에 작은 길들이 이어집니다. 몬산투에서 이 곳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인데 네 시간쯤 걸린다고 하더군요. 마을 여기저기엔 커다란 둥지를 튼 황새들이 보이고 마을 골목에 끝에는 갓난 고양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노인들을 만났습니다. 그 곁에서 천 년 넘은 돌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카페에서 점심 맥주를 마시는 영감님들 옆에서 커피도 한 잔 합니다. 차를 다시 코임브라에 반납해야 하는 일정만 아니라면 그냥 영감님들 사이에서 낮술이라도 마시고 싶은, 포르투갈 시골마을의 나른한 오후. 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곳을 보려는 욕심보다 마음이 내려앉는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괜히 느긋한 기분을 내다가 렌터카 반납 시간이 촉박해져 버렸습니다. 시간을 넘기면 얼마를 더 내야 하고 어쩌고 복잡하게 쓰여진 계약서가 생각났지요. 마음은 여전히 시골길을 천천히, 여기저기 들러가면서 여유롭고 싶었지만 결국 저는 코임브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중간에 지역 중심도시 카스텔루 브랑쿠 Castelo Branco('하얀 성'이라는 뜻입니다)에 잠깐 들러보는 것 정도만. 코임브라에서 피우당으로 갈 때 축구를 보러 잠깐 들렀던 코빌량 Covilhã 도, 돌아가며 들렀던 카스텔루 브랑쿠도 오래된 지방도시의 느낌이 가득한 곳들입니다. 오래된 성이 언덕 위에 있고 작고 예쁜 길과 골목들이 얽혀 있고 유월의 태양빛이 구석구석 비추는 곳마다 고양이 하품이 흐르던 도시. 큰길을 따라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성당이 있고 길과 길이 만나는 광장엔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이 어설프게 쓰인 한자 간판을 걸고 문을 열고 있는 도시들. 서둘러 다시 코임브라로 돌아오면서도 포르투갈 동쪽의 작은 도시들에서의 나른함을 계속 잊지 못했습니다. 리스보아도 포르투도 더없이 매력적인 도시들이지만, 지나고 나니 계속 떠오르는 모습들은 에보라, 기마랑이스, 사그레스, 알부페이라, 세투발 같은 작은 도시들의 골목들입니다. 다음에는 이 작은 도시들을 모아 포스팅을 한 번 해볼까요.